난 450마력 이상의 차를 셀 수 없이 많이 몰아봤지만 그런차의 조수석에 앉은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주로 내가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무방비 상태의 조수석에 앉을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996 GT2는 외관상으로는 터보와 같은 휠을 포함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차의 성격은 큰 차이가 있다.
이 빌어먹을 GT2의 조수석에는 왠만하면 다시 앉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첫번째 풀가속을 체험할 때의 공포는 상당했다.

고출력 머신을 많이 다뤄본 운전자와 그렇지 않는 깡다구뿐인 초짜는 쉽게 구별이 된다.
서스펜션의 세팅이 GT2처럼 레이싱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차량은 국내 공도에서는 극도로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차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차를 믿고 스티어링을 꺽었을 때 차의 대답과 반응은 냉정하기 짝이 없다.
그만큼 그냥 M3다루듯이 다뤘다가는 골로가기 쉽상이다.

2001년형 시승차는 GT2의 후기형으로 483마력 사양이다.
GT2로는 993이 1세대가 되고 996이 2세대가 되는데, GT3는 NA를, GT2는 터보를 사용한다.
카레라는 4륜을 선택적으로 그리고 터보는 4륜을 가지고 있지만 GT2와 GT3는 후륜구동만 존재한다.

ESP는 당연히 없고 997에부터 적용된 트랙션 컨트롤 조차 장착되어 있지 않고 오직 ABS이외에는 드라이버를 지원하는 장치가 전무하다.
예전에는 스포츠카에는 당연한 세팅이었지만 요즘 고출력차를 아무런 전자장비 지원없이 달릴 수 있는 기회는 실제로 많지 않고 때문에 아무것도 장착 안된 고출력 후륜구동을 몰 때면 확실히 좀 더 긴장을 해야한다.

시승차의 오너는 고출력 차량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고, GT2를 어떻게하면 안전하게 탈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운전자였다.
첫번째 풀쓰로틀때는 3단이었고, 4단으로 넘어갈 때 풀rpm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고개가 뒤로 졎혀짐과 동시에 노면의 잔진동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트러지는 착시 비슷한 것에 놀랄 틈도 없이 4단으로 넘어갈 때 클러치를 밟고 떼는 과정에 목이 다시 앞으로 왔다가 뒤로 쳐박히기는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500마력 이상의 차도 많이 몰아봤지만 조수석에서의 느낌으론 이차의 능력이 그 이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운전석을 교대하기 전에 찍은 사진들을 지금 봐도 성의가 없고 대충찍은 기색이 역력하다.
떨리는 손으로 빨리 차를 직접 느껴보고픈 맘에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귀찮기 짝이 없었다.

무겁고 탄성이 큰 클러치 패달을 밟고 기어를 넣고 출발하는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포르쉐를 시승했지만 이번이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1단에서 2단으로 옮기고 고속화도로에 진입해서 곧바로 풀쓰로틀로 2단부터 4단 풀rpm까지 곧바로 조졌다.
차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옆에서 느꼈고, 손과발의 박자를 단번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풀가속과 변속시 완벽한 클러칭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는 가속이 무시무시했고, 순식간에 260km/h를 넘기는데, 6단에 들어가도 부스트가 걸리는 4000rpm이후의 가속은 폭력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강력했다.

NA차량과는 다르게 고출력 하이부스트 터보차량들은 빠른 변속과 클러치를 연결할 때 클러치를 완전히 붙이는 동작을 비교적 차분하게 하고 풀가속을 해야 클러치에 부담이 없고, 혹시 클러치를 미트시키는 것이 익숙치 않거나 자신이 없다해도 클러치에 손상을 줄일 수 있다.

500마력대의 차량의 클러치를 죽여버리는 일은 너무나 손쉽고 간편할 정도로 식은죽 먹기이기 때문에 변속과 클러칭이 부드러워야 상당한 비용을 들여 말아먹은 클러치를 교환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GT2는 거친노면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신경질적인 차이다.
997 GT3와 비교해도 두배는 까다롭고 짧은 스트로크가 주는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다.

국내의 고속도로의 노면 기준으로 GT2를 코너에서 부스트를 걸면서 가속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200km/h가 넘는 상황에서도 풀가속시 살짝살짝 바퀴가 계속해서 헛돌 정도로 GT2에게 자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6500rpm에서 시작되는 레드존이 짧게도 느껴지지만 그만큼 각단에서 가속시 머무르는 시간 자체가 짧다.
롤케이지와 조수석 바닥에 큼직하게 있는 소화기가 그냥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카본 브레이크도 믿음직스럽지만 제동에 대한 밸런스가 워낙 좋아 가속할 때는 무섭다는 느낌이 자주 들지만 제동에 있어서만큼은 컨트롤의 자신감을 부여한다.

완벽하게 관리된 GT2는 변속기와 클러치는 물론 하체에 이르기까지 차를 이해하는 사람이 관리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400마력이 넘어가는 차들은 결국은 오너가 어떻게 운전했느냐에 따라 차의 수명과 상태가 큰 폭으로 왔다갔다한다.
차를 죽여버리는 것도 차에게 긴 생명력을 주는 것도 모두 오너의 몫인 것이다.

GT2와의 데이트를 마칠 때쯤 어깨와 목뒤가 뻐근한 것이 레이싱 카트를 타고 난 후의 몸상태와 비슷했다.
스티어링휠을 한손으로 잡아야하는 변속순간이 무서울 정도로 온몸에 경직된 상태로 운전한 탓이다.

시승후 자정이 훨씬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을 정도로 996 GT2는 나의 몸의 센서들이 sleep mode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911은 카레라와 터보, GT3와 GT2로 그 영역을 구분해놓고 어떻게 보면 같은 차대를 가지고 너무 많은 모델들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성격과 주행감성은 확실히 다르고 존재의 이유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나는 911 라인업에 찬성하는 사람중에 하나이다.

964터보가 320마력으로도 얼마나 화끈하고 뜨거운 주행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993터보는 트윈터보의 부드러움으로 큰 파워를 얼마나 부드럽게 노면에 전달할 수 있는지에 6단에서도 4단과 같은 가속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고속빨을... 996터보때 다시 꽝터보의 약간은 무시무시한 파워를 재현하는 돌아온 꽝터보로서 그래도 4륜에 운전하기 편한 GT성격도 가지고 있었다면 GT2는 공도에서 맘놓고 타려면 반드시 노면 사전 답사를 요할 정도의 심각한 수준의 전투머신으로 정의할 수 있다.

포르쉐는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로서 역사의 깊이만큼 좋은 샘플들을 많이 선보여왔다.
시대가 바뀌어 포르쉐에 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빠른 포르쉐만이 포르쉐를 정상에 세워놓는 것은 아니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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