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때 A특공대(A-team)라는 외화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보면서 쌓은 미국차에 대한 인상은 모든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드리프트에 대한 이해도 이때 어느정도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박치기를 해도 잘 찌그러지지 않는 무한한 단단함은 국산차는 역시 종이 짝이야라는 대중적 의견에 맞서 수입차 전체가 엄청나게 단단한 탱크와 같은 강성을 가졌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본격적으로 수없이 많은차들을 시승하게 된 95년 이후 미국차들도 여럿 접하게 되었는데, 이당시 가장 많은 비중을 가지고 시승했던 차들이 독일차였던 이유로 미국차에 대해 인상깊었다는 형태로 시승기를 썼던 기억이 거의 전무하다.


결론만 놓고본다면 중학교때부터 쌓아온 미국차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시승을 하면할수록 사라져갔고, 그 특유의 철학(?)을 이해하기에 나의 급한 성격은 평가에 있어서 그리 너그럽지 못했다.


하지만 콜벳에 대한 관심은 조금 달랐다. 멋진 스타일에 자동차 잡지에서는 과거 항상 미국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소개했었던 것에 직접 경험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인상이 좋은 몇 안되는 미국차중에 하나였다.

중학교때 모터매거진을 통해서 읽었던 기사중에서 ZR-1(90년부터 95년까지 생산된) 개발에 대한 기사를 읽었을 때는 나름 상당히 흥분했었다.


로터스에서 개발한 알미늄 블록의 V8엔진은 OHV 대신 DOHC 32밸브를 하드웨어로 사용했었고, 당시 최고속 300km/h를 목표로 400마력을 확보하기 위한 큰 노력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카가 적당한 공기저항계수속에서 300km/h를 커버하려면 최소한 400마력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제한에 부딪쳐 ZR-1 375마력으로 출시되었다.


출력의 크기를 떠나서 ZR-1은 기억속에 상당히 하이테크한 차로 받아들여졌었다.

96년도에 92년형 C4 콜벳 컨버터블을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300마력짜리 5.7리터 LT1엔진이 탑재되었던것으로 기억한다.


가속패달을 밟으면 우왁스럽게 쏟아지는 파워에 놀랐지만 한편으로 이러다가 뒤차축에 치어 죽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었다.


허술한 바디에 지나친 파워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쿠페버젼은 최소 두배이상의 강성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니 타보진 않았지만 훨씬 좋은 느낌일 것으로 기대했었던 기억이다.

C5로 진화하면서도 콜벳에 대한 기사는 빠짐없이 보았고, 거의 10년전에 읽었던 기사중에기억에 남는 내용은 C5에 와서 바디강성이 특별히 개선되어 반듯한 노면이 아니더라도 T탑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이었다
.


C4
까지만 해도 한쪽 바퀴가 조금이라도 울퉁불퉁한 것을 밟고 있으면 바디가 비틀려 T탑을 닫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C5
는 트랜스액슬 방식으로 바뀌었고, 캐나다에 있을 때 드래그 레이스를 달리는 모습은 상당히 내실있어 보였다.


C6
가 나왔을 때는 내게 미국차는 콜벳과 미국차로 구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콜벳은 분명 보통 미국차와 연관성이 극히 적은 미국차의 가장 훌륭한 상징성을 대표하는 모델로 머리속에 박혔다.


500
마력이 넘는 Z06에 대한 동영상과 잡지기사를 보면서 가장 세련된 아메리칸 머슬의 표본으로 이차를 기억하고 있었고, 이러는 찰라에 우연찮은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Z06를 구입했는데 시승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넓게 납작 엎드린 체로 내게로 굴러오는 콜벳의 자태는 정말 멋졌다.

오리지널 머슬 사운드를 뿜어내는 4개의 배기구는 마초맨을 떠올리는 극단적인 남성의 상징임에 틀림없을 정도로 나의 심장을 흔들어댔다.


시가지에서 한시간 정도를 운전하면서 느낀점은 시트포지션이 상당히 낮지만 그래도 시야가 좋다는 점으로 넓은 차체를 요리하는데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속도계가 200까지 밖에 안써있는 마일 계기판은 내부조작을 통해서 실제로 km/h를 기준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었는데, 어차피 200km/h이상의 속도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확인해야 했다.


1
단으로 96km/h를 커버하는 낮은 기어비는 505마력을 최대한 활용해 3.4초만에 커버하는데, 이때 10km/h단위로 써져있는 아나로그 속도계의 바늘이 상승하는 것을 직접보고 있노라면 급출발 자주하다가는 이 바늘이 뚝 부러져버릴 것 같은 기세로 상승한다.


큰 토크를 가진 엔진임에 틀림없지만 철저히 낮은 기어비와 맞물려 있다는 점과 65kg의 최대토크가 4800rpm에서 나오는 좀 부지런한 V8엔진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괴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하지 않았다.


체인지레버의 질감은 대단히 묵직하게 기어를 꽂아넣는 타입으로 감성적으로 아주 훌륭한 마무리였다.

클러치를 밟고 떼는 동작도 큰 부담이 없고, 단단한 반발력의 브레이크는 구형 포르쉐의 그것과 흡사한면이 있었다.


6
피스톤 캘리퍼에 커다란 사이즈의 디스크 로터는 구지 시험을 해보지 않아도 이변이 없는 한 충분한 제동력을 발휘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게을러 터진 미제 V8엔진에 대한 선입견을 짓밟든 Z06 7리터 V8엔진은 유연하면서도 부지런히 고회전을 커버한다.


6000rpm
을 넘어서 7000rpm으로 가는 과정은 엄청나게 커다란 피스톤을 가진 엔진의 특성상 힘겨울 수 있지만 후반 대쉬를 힘차게 해주어 레드존에 붙이는 변속에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다만 밸런스적인 측면에서 6000rpm을 넘어서면 어느정도 거칠어지는 면은 속이기 힘들다.

각 단수가 충분한 간격을 유지하는데, 고단으로 갈수록 촘촘하게 세팅해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 쥐어짜겠다는 알뜰하고 치밀한 계산자체는 Z06를 만들 때 전혀 고려되지 않았나보다.


즉 모든 것을 힘으로 커버하겠다는 우직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철저한 하이웨이 제한속도로 크루징할 때의 연비나 쾌적성을 충분히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6
100km/h1300rpm이면 되고 220km/h로 항속할 때도 3000rpm이면 충분하다.

물론 100km/h 6단 항속 때도 가속패달을 밟으면 속도계가 즉각적으로 반응할만큼 초반 토크는 험상 궂을 정도로 힘차다.


4
250km/h를 마크하고 5단에 들어가면 300km/h(GPS 298km/h) 6000rpm정도에서 마크하는데, 제원상 최고속인 315km/h 5단으로 가능하다.


오르막에서 마크한 속도를 참고한다면 페라리 F430이나 997 GT3와 흡사한 고속가속력을 보이는데, 300km/h이상을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가속패달에서 발을 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후륜이 제대로 접지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F430
260km/h가 넘어가는 순간 노면 기복에 후륜이 살짝 헛도는 현상이 있었지만 그 빈도면에서 Z06는 훨씬 더 심했다.


이 짧은 순간을 엔진이 트랙션 컨트롤로 제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힘의 전달이 쉴세없이 끊기고 붙고를 반복하는 나름대로 악조건속에서도 그런 무시무시한 가속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고속코너를 돌 때의 안정성에도 아주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코너에서 바운스를 쳤을 때 4바퀴가 좌우 평형을 유지한 체 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운쪽이 먼저 땅에 닿고 반대편이 한박자 늦게 착지하는 느낌 때문에 코너에서 착지할 때마다 차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가 자세를 잡고 다시 기울고를 반복하는 와중에 속도를 높여서 진입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엔진의 파워를 컨트롤하는 입장에서 파워가 후륜에 전달되는 느낌은 상당히 정직하고 정교하게 컨트롤 할 수 있었지만 고속에서는 차의 움직임이 전반적으로 너무 날카로워진 아니 조금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노면이 아주 고르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포인트는 코너에서 속도를 이기는 절대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유연성이 문제였다.


하지만 고속에서 바람소리가 생각보다 적게 들렸을 정도로 바디의 구조가 견고하게 느껴졌다는 점 그리고 너무 과도한 욕심으로 고속코너를 공략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쾌적하게 고속크루징을 즐길 수 있다는 점, 화통하고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로 시원한 배기음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점 등 Z06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상당히 잘 만들어진 스포츠카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전통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만들어진만큼 상당히 뼈대 있는 고집과 특유의 감성의 전달을 극대화시키겠다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실내의 플라스틱 질감이나 장치의 조작감촉은 미국차의 한계를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용서가 될 정도로 한번 타고 나면 그 느낌이 몸에 오래 남는 차이다.


지는해에 비유되는 미국차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불확실성에서도 콜벳은 확실히 돋보이는 차이다.

콜벳은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멋진 차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는 끝내주는 배기음과 남다른 존재를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차이다.


이렇게 멋진 차를 시승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이영수 원장님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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