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는 벤츠를 벤치마킹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을 정도로 벤츠를 의식했던 메이커였다.
벤츠가 목표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나중에 배꼈다느니 모방을 했다느니하는 말을 듣기 싫어 미리 벤츠의 위치를 인정하고 그에 근접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상당한 위치의 완성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뽐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시승한 SC430은 아주 독특한 장르의 차량으로 필드에서 다져진 경험으로 만든 느낌보단 흰 까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첨단 수퍼 컴퓨터를 총동원해 만들어낸 차와 같은 느낌이 든다.
디자인을 살펴보면 기존의 렉서스 모델의 바디라인이나 캐릭터와는 상관없이 좀 튀는 편이다.




일본차는 디자인의 철학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너무 튀면 가벼워보이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는 것을 비춰보면 SC430은 상당히 고급스러움을 풍긴다.




렉서스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지금처럼 국내에 빠른속도로 자리잡지 못했다면 SC430은 그저 국적없는 방랑자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외국여행자들이 늘고, 북미에 한번쯤 가본 사람들이라면 렉서스의 존재감을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렉서스는 모회사인 도요다 그리고 혼다보다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한국에 기대보다 빨리 정착시켰다.




SC430은 기본적으로 LS430의 파워트레인을 가지고, 하드탑을 가지고 있는 럭셔리 스포츠 쿠페이자 로드스터이다.




어떻게 보면 SL500과 나란히 보아야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실제로 SL과 SC는 나란히 비교하는 차종은 아니다.




가격을 떠나서 사양과 고급성에서 비슷할 수 있지만 실제로 차의 컨셉과 추구하는 방향은 극과 극이다.
즉 독일제 럭셔리 스포츠 로드스터중에는 SC와 나란히 비교되는 차종을 찾기 어렵다.




실내에서 느껴지는 회색톤의 공조시스템의 모니터의 색감과 분위기가 상당히 고급스럽다.
깊숙히 위치한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옆좌석에서 보기가 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일단 탑을 닫은 상태에서 시승을 해보았다.
몸과 시트가 마찰로 뽀득이는 소리가 소음으로 들려버릴 정도로 조용하고 고요하다.
엔진음이 아주 멀리서 들리는데, 클래식을 들으며 미끄러지듯 달릴 땐 변속이 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엔진의 숨긴 힘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달리는 모습이 주인에게 절대 복종을 맹세한 듯 느껴진다.




가속패달이 가볍지만, 초기 쓰로틀 개도 10%에 힘을 많이 싣지 않아서 대배기량 일본차 특유의 초반 액셀링에 심하게 꿈틀거림은 없다.




가속패달을 깊이 밟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튕겨나가는데, LS430을 시승할 때도 그랬지만 고속으로 속도가 높아질 때 엔진의 적응력과 가속력이 기대보다 훨씬 좋다.




각단 6000rpm에 2단 105km/h, 3단 170km/h, 4단 240km/h이며, 4단 6300rpm에서 250km/h를 마크한다.




평지에서 250km/h를 어렵지 않게 마크하고, 5단에 들어가면 LS430에서도 그랬듯이 260km/h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렉서스의 2세대 V8엔진은 회전이 매끄럽고, 실제로 고급차용이 아닌 스포츠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실내에서 들을 수 있는 음의 정도가 독일제 V8과 비교해 작은 점이 매니어들의 감성을 사로잡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일단 음색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름대로 멋지게 다듬어진 음색이다.




일단 방음과 탑의 완성도를 언급하자면 하드탑을 처음 만들어보는 렉서스 입장에서 대단한 성과, 아니 탑쪽의 완성도는 완벽에 가깝다.




속도계를 보지 않으면 속도감에서도 차이를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운전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맘속으로 속도를 되새겨야 할 정도다.




바디강성이 어느정도인지 수치로 알 수 없지만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서 로드스터 특유의 엇박자로 떨리는 진동이 거의 없다.




강성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설계의 완성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속으로 달릴 때 노면의 기복에서의 SC430의 반응은 일단 바운스후 체공시간이 좀 긴편이다.




때문에 한번 뜨면 빨리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독일차에 익숙한 오너라면 좀 의아해할 수 있고, 스티어링의 중심의 민감도가 아주 약해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는 조타각이 좀 큰편이다.
제동시 노즈 다이브와 테일리프트가 크고 전체적인 피칭 역시 큰 편이다.




차가 가진 승차감이 LS430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하드하고 타이트한 핸들링은 기대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조금 느슨한 하체이긴 하지만 고속에서 조정을 해보면 그리 답답하지 않다.




코너에서 롤이 있지만 고속에서 완만한 코너를 제법 시원하게 돌아나가고, 고속 코너에서 가속패달을 놓아야하는 상황에서 뒤가 상당히 안정적이라 갑자기 머리가 안쪽으로 향하는 턱인현상이 고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턱인은 운전의 재미를 돋구지만 고속에선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SC430은 은근히 고속에서 조정안정성이 높고, 220km/h로 완만하게 돌아나가는 코너에서 의도적으로 제동을 걸었을 때 역시 머리가 안쪽으로 감기듯 향하는 느낌이 없이 제동밸런스를 유지한다.




고속에서의 제동배분이 상당히 안정적이었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240km/h에서 의도적으로 제동을 걸었을 때 브레이크는 넘치지는 않지만 페이드현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아 과거 일본차들의 브레이킹 경험으로 현재 일본차의 브레이킹을 과소 평가하면 안될 것 같다.




250km/h로 달리는 상황에서도 실내의 풍절음은 렉서스 LS430수준이며, 바람이 새는 소리나 차체의 그 어디에서도 잡소리와 삐걱임을 찾을 수 없다.




SC430은 일본차가 한번 맘 먹으면 뭐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차종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차종인데도, 여태껏 차에 결함이나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10년이 넘은 렉서스 LS400에서부터 입증된 파워트레인의 안정성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SC430은 아쉽게도 튜닝이 어울리는 차종은 아니다.
그냥 그 자체를 즐기면 안성맞춤이고, 튜닝을 하면 차가 가진 장점을 너무 많이 잃게 될 것 같다.
럭셔리 고급세단에서나 가능한 승차감과 방음수준을 가지고 있고, 탑을 열고 달릴 수 있는 쾌적성을 즐기고, 초고속주행의 긴장감보단 음악을 들으며 고속크루징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한다면 와인딩보단 고속화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는 쪽이 훨씬 재미있다.
좌우로 굽이치는 도로를 타이어의 마찰음을 내며 달리기에 SC430은 너무 고상하다.




SC430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체와 배기음을 키워야겠다고 맘먹는다면, 과감히 말하지만 서킷같은데서 즐길 수 있는 세컨드 카를 구입하길 권한다.




SC430을 포함해 렉서스의 현재의 위치를 보면 북미를 의식한 차만들기에서 크게 성공한 메이커인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북미인들이 좋아할만한 차, 즉 북미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거스르지 않는 문안한 차를 만들어 차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면 이제는 독일차처럼 조금은 거만해도 좋을 것 같다.




이미 현명한 이들은 일본차와 미국차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지 않는다. 때문에 '타기 싫으면 타지 마라'라는 배짱의 차만들기를 해도 될 듯 싶다.




그만큼 렉서스로 이미 정복한 나름의 영역의 최고봉에 대한 자신감으로 좀 더 색깔이 강한 차종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그동안 일본차는 일본차 다움이 약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가장 많은 퍼센테이지 부류의 사람들을 만족시키는데 너무 열중했었다면 이제 렉서스가 좋아서 찾는 매니어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차만들기를 해도 될 시기인 것 같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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