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중반 거의 망할뻔한 포르쉐가 기적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능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다.
공냉식 포르쉐에 나를 포함해 많은이들이 열광하지만 그때의 전통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당시의 Product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포르쉐는 이미 우리들의 추억속의 브랜드가 되었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반발짝 빨리 대처하는 유연함과 안목이 회사를 부흥하게 만든다는 것은 복스터와 초대 수냉식 911인 996의 등장 직후 매니어들의 냉냉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포르쉐가 성공적으로 가파르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복스터와 996은 각종 외장은 물론 실내의 인테리어도 거의 동일했을만큼 많은 부품을 공유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많은 매니어들이 포르쉐를 비난했었다.
911이 하급모델의 부품으로 짜맞쳐져서는 안된다고....

993까지의 각지고 투박한 실내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그냥 차에 미친 사람뿐 아니라 여성들이 보았을 때도 구미에 당기는 모습으로 완전 탈바꿈했다.
매니어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구식을 원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본능적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걸러서 들어야한다.

여기에 카이엔이 등장할 때도 포르쉐 SUV가 왠말이라며 떠들석했지만 현재 카이엔이 없었다면 그 많은 cash를 모을 수 없었을테도 현재 폭스바겐 그룹의 대주주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격에 걸맞는 서비스" 바로 이부분이 복스터의 등장 이후 포르쉐가 제품에 추가시킨 큰 항목중 하나이다.
993터보나 GT2의 가격을 고려했을 때 인테리어가 국산차의 포니를 떠올린다면 여성들 입장에서는 그 가격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남성들이 자기 만족과 희열을 위해 차를 즐기는 부류도 많지만 늘상 헬멧을 쓰고 레이싱 슈즈를 신고 운전하는 것이 아닌 이상 평생의 관심인 여성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차를 운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포르쉐가 그들의 일반 모델들과 스페셜 모델들의 고급성을 높이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은 이루말할 수 없이 높다.

결과적으로 997을 예로 들어본다면 개인적으로 과장을 조금 보태 롤스로이스를 표방한 스포츠카가 되는 듯 보인다.

GT3는 경주용차의 DNA를 가진 포르쉐의 가치를 높이는 상징이다.
911의 초대 RS인 Carrera RS가 GT3의 원조격이며, 74년에 930바디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초대 RS를 독일에서 시승해본 경험과 3.6리터 NA고회전 엔진의 남다른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997 GT3를 시승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실내는 모니터도 있고, 모든 스위치가 다이얼 대신 버튼으로 되어 있어 너무 편안하다.
묵직한 클러치와 체인지레버의 느낌이 터보를 포함한 다른 911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체인지레버의 스트로크도 짧지만 유격이 전혀없이 타이트해 후륜으로 리모트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와인딩을 공략했었던 상황이라 차에 적응하는 시간조차 없이 연속되는 코너와 사투를 벌려야했던만큼 모든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롤이 느껴지지 않는다는점과 한덩어리의 메탈피스안에서 운전한다는 느낌, 그리고 액셀링이 차의 모든 모션에 정직하게 관여할 수 있는 동물적 근성을 가졌다는 인상에 가속패달을 후려칠 때는 스티어링이 제법 풀려있을 때여야하며, 노면이 매끄러움을 다시한번 확인해야 한다.

415마력의 수치적 파워를 고려했을 때 GT3가 보여주는 가속력은 사기에 가깝다.
400마력대에 1400kg(공차중량 : 1395kg)이나 되는 몸집이 이런 무시무시한 가속력을 보여주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2단 150km/h(8400rpm)
3단 190km/h(8400rpm)
4단 250km/h(8400rpm)
5단 300km/h(8400rpm)
6단 325km/h(7600rpm)

기어비가 보여주는 바는 극도의 롱기어 세팅인데도 불구하고 중속영역의 레스폰스가 무서우리만큼 날이 서있다.
액셀링으로 뒤가 나르는 경계가 가속패달을 밟아 내려가는 가속도에 그대로 좌우된다.

즉 똑같이 가속패달을 끝까지 밟는 상황에서도 약간 천천히 가속패달을 전개하면 너무 젠틀하게 속도가 붙던 녀석이 약간 더 급하게 전개하는 순간 다시말해 가속패달이 약간 우왁스럽게 열면 가속패달이 바닥에 붙기 한참전에 이미 뒤가 커다란 각도를 만들면서 날라버린다.

트랙션 컨트롤이 있다는 사실은 초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GT3에 장착된 트랙션 컨트롤은 눈길에서도 최소한의 트랙션을 보장해주는 기능 이외에 공도에서 안전성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만큼 전자장비의 방해의 폭이 거의 없고, ESP(PSM)가 없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운전자가 지는 Pure sports머신을 추구한다.

sports버튼을 누르면 가속패달의 예민성이 더 높아지고 3400rpm에서 가변배기가 열리면서 엄청 고음으로 음색이 변한다.

포르쉐의 수평대향 엔진이 고음을 이렇게 뿜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멋지고 흥분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마케팅적인 음색이 아닌가 하는 거부감도 들었다.
부밍음이 없는 깨끗한 회전감성 대신 조금 과장되고 으쓱대는 형태의 배기음은 어쩌면 GT3를 일반 카레라와 차별시키는 요소로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

차를 리프트 시켜보면 휠이 거의 쳐지지 않을 정도로 스트록이 극도로 짧은 서스펜션이지만 승차감도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버튼조작으로  더 단단한 모드를 선택할 수 있지만 공도에서는 전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일반 세팅도 충분히 단단하다.

911의 고속안정성은 대단히 높지만 노면이 아주 매끄럽다는 가정없이는 상당한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Carrera S와 비교한다면 고속에서 다운포스가 높아서인지 고속코너에서 만나는 범프에서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고속으로 달릴 때 가속패달을 놓으면서 머리가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향하는 턱인도 고속으로 갈수록 안정화되는 점도 Carrera S와 다른 점이다.

997 터보와 GT3를 두대 가지고 있는 오너의 말로는 두대의 가속력과 최고속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만 동일한 조건으로 스포츠 주행을 하면 연비가 GT3 쪽이 두배에 가깝게 좋게나온다고 한다.

GT3를 가지고 있으면 왠지 서킷에서만 즐겨야할 것 같은 위화감은 997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카레라보다 무거운 클러치와 약간 더 단단한 하체가 일반 도로주행을 망설이게 하지는 않는다. 운전의 기본만 있으면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거부해야할 차가 아니다.

와인딩과 고속주행을 모두 경험하고 나니 GT3와 좀 더 친숙해진 느낌이다.
포르쉐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는 이유는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포츠카를 만들면서도 그 본능을 잃지 않는다는 점, 다시말해 고급스러워지고 커져도 운동 신경이 오히려 더 좋아지는 점.

전자장비의 투입이 많아져서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RR의 느낌과 감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

이렇게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은 고도의 엔지니어링과 차를 만드는 이들의 고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GT-R이 911이 가진 모든 기록을 전세계 주요서킷에서 깨부수는 마당에 포르쉐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포르쉐는 여전히 포르쉐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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