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예전 군대 생활중의 추억 하나가 생각나네요..
 
전 공군 운전병 출신으로 특기가 특수차량(항공기 급유차, 항공기 견인차등을 주로 모는 특기입니다.)이 었지만..정작 맡은 일은 조종사들 태우고 다니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제가 갈 자리가 아니었는데 바로 윗고참이 팔다친 핑계로 도망가버리는 바람에..ㅠ.ㅠ)
 
주로 하는 일이 조종사 수송이고 그 외에는 비행대대의 업무에 관련된 일을 지원해주는 것이었죠..
제가 근무하던 곳이 부대내에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라 차가 없으면 업무 처리가 힘든 그런 부대내 오지(?) 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임무인 조종사 수송(출퇴근 및 비행활동 지원)과 그 외 업무 지원이 서로 충돌되는게 많아서 건의 사항을 올린 결과..
 
업무 지원 용으로 스쿠터가 한대 보급되었습니다. 스쿠터의 대명사 대림의 택트가요..
암튼 스쿠터가 한대 생기는 탓에 부피가 큰 물건 수송(보급품 수송, 조종사들 주류 배급 등)에만 제가 지원을 하게되면서 어느 정도 일도 쉽게 풀리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근무도 끝나고 조종사들도 다 퇴근 하고..개인적인 일로 파견 나가 있던 대대의 김병장과 같이 부대내 BX에 들렀다가 마침 택트를 몰고 다니는 파견 대대의 체송병 한 일병을 만났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생겼습니다. 마침 한일병을 본 김병장이 계급의 위력으로 택트를 뺏어타고 저에게 던진 한마디..'어이 최병장 이걸로 나랑 레이스 할까?' 그냥 그때 제가 '싫어' 한 마디면 되었을것을 재미삼아 '좋지'라고 한게 화근이 되었을 줄이야..
 
결국 그 자리에서 배틀이 벌어지게 되었죠..49cc 단기통 2스트로크 공랭 엔진의 택트랑 대략4000cc 4기통 디젤 수냉의 25인승 코러스 '개(改)'의 레이스가요..구간은 부대 외곽 도로에서 대대까지 방식은 스쿠터가 약세인 관계로 선행 출발 제가 먼저 도착하면 제가 이기는 ..그 유명한 '이니셜 - 디 룰'의 변형... 
 
김병장이 스쿠터로 먼저 출발하고 전 바로 옆이 수송대대 본부(저의 원 소속)인지라 슬금슬금 출발 드디어 외곽도로에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뿌아앙~~~ 하며 맹열히 치고 나가는 김병장의 스쿠터..그 뒤를 까랑까랑 거리면 따라가는 코러스... (여기까진 분위기 좋았습니다..) 제가 붙으면 김병장은 또 열심히 달아나고..잠깐 여기서 의문이 들실분들이 계실테죠..제가 왜 한번에 추월하지 않았는지..충분히 가능할텐데 말입니다...그 이유는 그 이전에 외곽도로에서 과속하다가 하필 부대내 최고 지위이신 단장님의 '1호차'에 적발이 된적이 있어서 가급적 규정 속도인 40km/h를 준수하면서 달리고 있었습죠..(다행히 그 1호차는 수리 끝마치고 시험 주행중에 저를 발견해서..1호차에 동승하고 있던 일직 사관에게 깨지는 걸로만 끝났죠..ㅋㅋ) 즉 규정 속도내에서의 배틀인 탓에..앞장서는 김병장이 멈칫하면 추월할 생각 이었던 것이죠..
 
첨엔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그것도 배틀이라고 하다보니 규정 속도내에서 심각해지더군요..붙었다 떨어졌다 ..한참 둘이서 그렇게 배틀을 하고 있는데 제 뒤에 앉아서 같이 구경하던 한일병 첨엔 저랑 같이 맞장구 치면서 구경하더니만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저보고 페이스 낮추어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속도를 약간 줄이는 순간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페이스를 줄이는 것을 보고 김병장이 좀 더 떙겼던 것 같더군요..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회 라인이 커지고 급기야 도로 바깥쪽의 얕은 배수용 도랑에 걸리고 때마침 거기에 있던 나뭇잎을 밟아 버리고서 그대로 슬립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순간 풀(?)브레이크(ABS도 없는 차인데도 한번도 급브레이크로 바퀴 잠긴적이 없다는..ㅋㅋ)를 밟는 제 눈앞으로 슬로우 비디오처럼 펼쳐지는 광경..택트는 이리저리 굴러다니고..김 병장은 허공으로 부웅 날아가선 길 옆의 습지에 처박혀 버리는 그 광경..
 
미리 속도를 줄인 탓에 굴러다니는 택트를 2차 추돌하는 일은 없었지만 급히 차를 세운 다음 김 병장 구하러 가보니..김 병장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터덜터덜 걸어나오더군요.. 상처 하나 없이요.. 김병장을 살펴본후 차에 태우고 한일병이랑 둘이서 택트를 차에 싣기 위해서 살펴보니..불쌍한 택트는 목이 부러져서 덜렁덜렁 거리더군요..
 
바로 부대내 의무대로 갈려고 했지만 사고 당사자의 완강한 반대로 그냥 대대로 돌아왔습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 그 택트 수리할 때까지 다시금 피곤한 생활이 시작되었고..전 그 이후로 두번 다시는 두 바퀴랑은 배틀 하지 않습니다.
 
이찬님의 글을 보고선 갑자기 생각나서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