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다시 미국으로 들어온뒤 며칠이 지나서 오랜만에 황순명님과 오테가 하이웨이에 함께 올랐습니다.

한달사이 놀랄만큼 실력이 늘었더군요. 게다가 수동변속기를 탄지 얼마 되지 않은 분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힐앤토까지 실수없이 구사하는 등 여러가지로 감탄할만 했습니다.

며칠후 승현이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중 순명님 얘기가 나왔습니다.


“순명님 지금은 꽤 빨라졌어. 오테가 오르막에서는 나와 비슷할거야.”

“그야.. 차 성능차이가 있잖아. 붙을려면 내리막에서 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중간고사는 엔젤레스 크레스트 내리막에서 비틀 따라붙으면 합격이고, 기말고사는

오테가 하이웨이에서 내 볼보와 겨루는 걸로……”


이렇게 하여 순명님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문제는 정해졌습니다. 중간고사는 의외로

뜻하지 않은 시점에서 치루어지게 되었지요.

어느날 저녁 저는 테메큘라라는 동네에서 테드 회원인 권영석님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테메큘라는 승현이네 동네에서 오테가 하이웨이를 타고 산을 넘어 호숫가를 지나 15번

 

프리웨이로 20분정도 더 내려온  곳에 있는 도시입니다. 8시경 핸드폰이 울리더군요.

 

승현이였습니다.

“모하냐?”

“응, 테메큘라에 있어.”

“나…갑자기 간만에 산길을 타고 싶어져서 말이야…”

“그래? 그러면 이따가 9시에 오테가 하이웨이에서 만날까?”

“O.K.”


셋이 함께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테메큘라에서 출발하면서 순명님께도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더군요. 오테가 하이웨이 선상에 자리잡은 Lookout Roadhouse에서 승현이와

만났습니다. 그도 순명님께 전화를 했었는데 안받더라고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한번

더 했습니다. 신호음이 몇번 울리더니 느린톤으로 ‘여보세요~’ 하는 순명님 특유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우리가 오테가 하이웨이에 있다고 하자 그때 출발해서 오기엔

좀 늦은 것 같다며 아쉬워 하더군요. 그래서 승현이와 저, 둘이서만 달리기로 했습니다.

둘이서 킬렌 트레일에 들어갔다 나와서 오테가 하이웨이를 타고 빠져나오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휴대폰 불통지역이 꽤 많은데 마침 와인딩

구간을 모두 빠져나와 산 아래 직선구간에 들어섰을때여서 전화를 받을수 있었습니다.

순명님이었습니다. “저 지금 오테가쪽으로 가는 길이에요.”





이리하여 셋은 오테가 하이웨이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순명님이

선행, 그 뒤를 승현이가 따르고 제가 마지막에 가는 것으로 했습니다. 초반의 직선구간과

완만한 지형에서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렸습니다. 목장을 지나 코너가 타이트해지는

곳에 다다르기 직전 앞에서 느리게 달리던 그랜드 체로키가 길을 비켜주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달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전에 달렸을때를 기준으로 짜본 시나리오에서는 오르막에서 제가 약간 뒤쳐질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며칠사이 순명님의 실력이 더 늘었기 때문에 제차는 초반부터 두대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차의 성능차이가 있지만 예상보다 크게 차이가 나더군요.





코너 서너개를 돌고나서는 두 차의 테일라이트는 완전히 제 시야에서 벗어나버렸습니다.

중간중간에 느리게 가는 차들 때문에 제가 가까이까지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그 차들이

길을 비켜주기만 하면 제차가 그들의 미러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자기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동승했거나 뒤차로 따라올 때 선행주자는 아무래도 마음에

부담을 갖게됩니다. 실수하는 모습이나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다 실력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겠죠. 순명님의 경우 그런

부담감을 느끼는 것보다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속도차이가 워낙 커서

잠깐밖에 못보았지만 경쾌하게 달리는 모습이나 라인타는 스킬이 범상치 않더군요.

멋지게 달리는 두대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잠깐씩 보면서 참 기분이 좋았더랍니다.

물론 본인의 재능과 노력 때문이지만 제게 운전을 배운 사람이 그사이 그렇게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수 없지요. 그리고 제 비틀에게도 파워튜닝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셋이서 함께 달릴 때 나 때문에 다른사람이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그 또한 미안하니까요.

Lookout Roadhouse 에 차를 세우고 저와 승현이는 순명님이 굳이 엔젤레스 크레스트

내리막을 달리지 않아도 중간고사는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볼보 왜건 안에서 한참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늦어져 오테가 하이웨이를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내리막길에서는 정승현-황순명-저 의 순서로 달리기로 했지요. 내리막에서는 따라갈만

했습니다. 우선 공도상이므로 승현이가 전력질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요.

그래도 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볼보 왜건의 라인을 그대로 따라 밟으며 바짝 추격하는

렉서스, 그 뒤를 휘청이며 따라가는 풍딩이, 이렇게 세대의 차는 2004년 1월 어느

금요일 밤의 오테가 하이웨이를 휘저으며 내려갔습니다. 오테가 하이웨이의 내리막

와인딩의 후반부는 중저속 복합코너들이 연달아 나오는 구간입니다. 이곳 중 한

코너에서 황새 따라가던 뱁새 가랑이 찢어질 뻔 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비틀의

네바퀴가 접지력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본의아닌 4륜 드리프트 상태로

코너를 돌게 되었습니다. 본의가 아님이란 게 뽀록날수밖에 없었던 것이…. 중앙선을

살짝 넘어갔었거든요. 배틀이든 혼자 재미로 달리든 중앙선이나 옆차선은 침범하지

않는데 이때는 살짝 넘어갔다 들어왔습니다. 옆으로 흐르는 윈드실드 밖 풍경은

볼보 V70이 그리는 깨끗한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렉서스 IS300 의 뒷모습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처음 순명님께 운전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저와 비슷하게 달리려면 1년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었는데 그 반도 안되는 5개월만에 공도에서는 저와 호각으로 달릴만한

실력이 되었더군요. 물론 자동차의 성능차이가 분명히 있고 경험의 차이라는 것도

있으므로 아직은 저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만,

결코 만만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순명님 실력이라면

이제 오테가 하이웨이에서는 하산할만 했습니다. 만일 타임어택으로 달린다면 시간을

단축할수 잇는 여지는 많겠지만 공도에서 그 이상으로 달리는 것은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전도 위협할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도에서 하산하고 이제 나갈 곳은 써킷입니다. 올해 순명님은

트랙이벤트에 가능한 많이 참가할 예정으로 있지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