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한지 이제 한달이 조금 넘은 Scoupe Turbo..
자질구레 손을 봐서 이제 대충 내 입맛대로 타고 다닐만하게 되었습니다만,
요즘 경찰님들이 보신다면 '그냥 잡아 잡수시라고' 하는 듯 불법스러운 모양새..
 
차를 일주일에 두세번 타고 다니는 게 안스러워 고속도로나 살포시 달려줄 겸,
이 넘을 데리고 튜닝 단속의 거센 풍파가 몰아치는 서울로 용감하게 떠났습니다.
 
다소 높은 기어비인 관계로 고속은 좀 피곤스러운 차량이라,
2차선으로 그냥 100km/h, 3000rpm 유지하면서 음악 들으며 가는 중.
경부고속도로 청주 부근을 지났을까.. 백미러 뒤로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더니
4차선으로 휘릭~ 하고 빠져서는 앞으로 다시 사라집니다. 대략 160km/h 정도..
 
'투스카니 2.0 인가.. 졸린데, 잘 되었다.'
 
'멀리 가버리긴 했지만 좀 있으면 과속 카메라가 있으니깐 따라잡을 순 있겠지..'
4단 쉬프트 다운 후 풀 부스트.. 5단 풀 부스트..
 
2.0 노멀들에겐 어지간해선 우위를 점하는 출력대 중량비라서
평소 경험으로 만만하게 보고 일단 카메라 전방까지 따라 붙은 뒤 감속..
그러나!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그냥 카메라 무시하듯 계속 가버리는 검은색 투스카니..
'허걱.. ㅡ.,ㅡ;; 모야..'
 
다시 재가속 시작해서 2차선에서 전방에 달리는 투스카니 뒤에 붙을 무렵,
앞 차를 피해 투스카니는 오른쪽 3차선으로, 나는 왼쪽 1차선으로..
'시작 되었냐..'
일단 기어를 낮추고 옆에 서는 걸 확인한 후에 풀 악셀링..
 
'철컥, 쒸잉~ 풋슝~ 철컥, 쒸이잉~'
작은 대신 리스펀스가 빠른 순정 터빈은 이내 부스트를 채우고, 아펙시 BOV 특유의 사운드 작렬..
 
한대, 두대.. 4단 레드존에 도달할 무렵까지는 조금씩 거리를 벌리면서
'얼마나 잘 쫓아오나 보자..'라고 싱긋이 웃으면서 시작한 배틀이었건만,
5단 넘어가고서는 백미러로 슬금슬금 가까워지는 헤드라이트 불빛..
거슬리기 시작한 오디오 볼륨을 최대로 낮추면서..
'흐흐.. 오늘 제대로 걸렸냐..'
 
게이지를 보니 정상 부스트 0.6바에, 타코미터는 어느덧 5단, 5500rpm에 다다르고..
'고속빨은 역시 1.5 SOHC에다 T015 터빈의 한계구만..'
 
앞서 가는 차들 사이로 고속 슬라럼을 타면서 속도를 조금씩 올려도
뒤의 불빛은 3대 정도 차이로 따라오는 상태.. 
두 대는 계속 꼬리를 물고 달려나가고, 드디어 내 차의 기어비 한계속 직전..
전방 갓길에 나타난 경광등을 보고 브레이킹.. 뒤따르는 투스카니도 함께.
'정말 제대로 붙었구만..'
 
3단으로 내리고, 애프터파이어 한방.. ' 퍼벙~' 다시 내지르기 시작.
4단까지는 앞서 거리를 벌리다가 5단은 역시 뒤로 조금씩 다가오는 투스카니..
200km/h에 가까워지면서 실내는 노쇠한 섀시에서 오는 삐걱대는 소리로 가득차고,
바닥까지 밟은 엑셀 페달에 엔진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상황.
 
'에라 모르겠다.. 지나가시라..'
1차선으로 내달린지 한참이 지났건만, 결국 2차선으로 자리를 내주고
백미러를 쳐다보는데 투스카니가 같이 차선을 바꾸는 겁니다.
'모야.. 슬립 스트림? 아님 뒤에서 계속 종용하는 건가..?'
 
두어번 더 차선을 변경해도 계속 라인을 따라 붙습니다.
이제와서 기권할 수는 없고, 깨끗이 승부를 내야만 하는 상황.
'이대로는 엔진이 깨지도록 달리는 수 밖에..'
 
5단 풀악셀로 레드존을 조지기 시작하고난 후
그 몇 분동안이 몇십 분처럼 길게 흘러가고, 내 차가 그렇게 느리다고 느껴질 줄은..
 
비록 최고속은 기껏 200km/h을 겨우 넘는 정도지만,
바닥까지 밟은채로 X빠지게 달리는 차안에서 흘끔 거리며 쳐다보는 백미러에
정말로 끈질기게 따라 붙는 그 헤드라이트..
 
이제껏 달려본 배틀 중에 가장 짜릿했습니다.
추월도 가능했을텐데, 왜 뒤만 따라왔을까.. 하는 의문.
왠지 이겨도 찜찜할거 같은 그 기분.
 
한참을 달려 다음 카메라가 있는 지점에서 감속..
투스카니도 오른쪽 차선으로 빠지면서 같이 감속.
힐끗 옆 창을 보니 비상등을 점멸하고 있더군요.
'당신, 멋졌어..'하며 나도 답례로 비상등.. '내가 진 겨..'
 
그대로 내가 선행하면서 천안 휴게소까지 둘다 흐름에 맞추어 달리다가
커피라도 한잔할까 싶어 휴게소로 깜빡이를 켰는데,
그저 '잘 놀았다'는 표시인 듯 투스카니는 다시 비상등을 점멸하고는 옆을 지나갑니다.
요즘 배틀 붙는 사람들은 거의가 매너가 좋은 편이지만,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사하고 보냈습니다.
 
혹시 그 투스카니 오너분이 이 글 보신다면 묻고 싶었던 것은..
순정이었는가..?
추월을 하지 않은 이유는?
 
흠냐.. 미루던 부스트 업 얼릉 해야겠다는 생각들더군요.
여튼, 가장 오랫동안 X침 당했고, 가장 재미있는 배틀 중의 하나였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