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는 픽업트럭입니다. 하지만 미드사이즈 세단 시장도 상당한

규모지요.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현대 소나타, 마즈다 6 등이 미국 미드사이즈 세단 시장에서

격돌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시보레 말리부와 포드 퓨전 등 이 급에 투입된 미국차의 성능과

상품성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스즈키는 이번에 키자쉬를 출시하여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스즈키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모델 론칭이라고 이야기하는

만큼 스즈키가 키자쉬에 거는 기대는 상당히 큽니다. 사실상 스즈키는 일본 내수 및 인도 시장에

주력하느라 북미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이렇다 할만한 노력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스즈키는 80년대 중반 미국시장에서 경량 오프로더 사무라이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88년

컨수머 리포트에서 회피기동시 전복위험성을 과장하여 여론화하면서 판매는 물론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 이미지와 판매 모두에서 좀처럼 회복하지를 못했지요.



물론 스즈키의 라인업 자체가 소형차와 경차 중심이라 미국시장에 어울리는 차종이 적었던 것도

있지만 좀처럼 매력 있는 제품을 내놓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차와 소형차가 스즈키의 주종목인만큼 얼마전까지 GM 대우의 매그너스와 라세티를 베로나와

포렌자라는 이름으로 들여와 라인업의 구색을 맞추는 수준이었습니다.

키자쉬는 GM의 플랫폼을 사용한 차가 아니라 스즈키에서 자체개발한 미드사이즈 세단으로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차들보다는 조금 작은 차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급보델보다 차체가 크다는 것을 세일즈포인트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동차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커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다 보면 결국 아예 다른

세그먼트로 넘어가는 경우까지 생기게 됩니다. 혼다 어코드도 일반적인 인식은 미드사이즈

세단이지만 현재의 모델은 풀사이즈로 분류되지요. 그만큼 차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스즈키 키자쉬는 작은 차체와 적당한 가격, 그리고 스포티한 성능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선 외관 스타일링은 사실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약간 어렵습니다. 작년 뉴욕 오토쇼에서

발표된 컨셉트 키자쉬 3는 상당히 멋진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말이죠.

양산형 키자쉬는 컨셉트 키자쉬 3의 스타일링 요소를 많이 이어받기는 했어도 비례감이나

조화로운 마무리에서 어색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즈키의 자동차 스타일링은 대체로 그다지 경쟁력이 높다고 말할 수 없었죠.

특히 소형차 Esteem과 Aerio는 월마트의 중국산 장난감같았고 이를 대체한 SX4도 스타일링을

내세울 수 있는 차는 아닙니다. 키자쉬는 이들에 비해서는 좀 나아졌지만 스타일링으로 승부를 걸기는

좀 어렵겠죠. 바깥쪽으로 최대한 뽑아낸 대구경 휠 덕분에 차가 서있는 자세가 당당하고 시각적인

안정감도 있지만 이 때문에 차체가 조금 작아보이는 비례감을 보입니다.

외관 스타일링은 유럽풍이기는 하지만 트렌드를 이끄는 쪽이 아니라 한두 세대 전의 유럽차를

따라가는 느낌입니다. 모델체인지를 목전에 둔 VW 제타 같은 느낌과 함께 어느 각도에서 보면

아우디의 초대 A4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사진보다 실물이 나아보이기는 하지만

첫 인상에서 큰 감흥을 줄만한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심플해지고 있는 유럽차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면이 복잡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반면에

지나치게 SF적인 일부 일제차들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타일링이야 완전히 주관적인 견해이니 이 차의 외관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실 분도 계시겠지요.

저도 자꾸 보다보니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더군요. 이 세그먼트에 처음 뛰어드는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무난한 스타일을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외관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문을 열고 차내로 들어서면 이 급에서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운전자를 맞이합니다. 지나치게 번잡하거나 너무 단순화시키지도 않은 인테리어의 구성도 미드사이즈

세단에 알맞은 모습이고 소재의 질감과 마무리도 수준급이더군요. 좌석도 편하고 공간도 적당합니다.





ㅔ스티어링휠은 틸트와 텔레스코픽 모두가 지원되며 그립감도 좋습니다.

오디오는 락포드 포스게이트로 막귀인 제게는 꽤 좋게 느껴지더군요.

외관에서 다소 짜게 주었던 점수는 실내에서 어느 정도 만회됩니다.

그러면 운전감성은 어떨까요? 달려보고 나면 이 차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와인딩로드를 달려보면 ‘보통 사람들도 살 수 있는 세계수준의 스포츠세단’이라는 목표를 충실이

이루어낸 차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주행성능은 스즈키 키자쉬가 가진 가장 큰 무기입니다.

저는 6단 수동변속기가 장비된 전륜구동 모델을 타보았는데 전반적인 주행감성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스포츠세단이라는 말이 충분히 어울릴만큼 균형잡힌 성능으로 오래건주 포틀랜드

인근의 와인딩로드에서 상당히 경쾌하게 달릴 수 있었을뿐만 아니라 개발과정에서

뉘르부르그링에서의 테스트도 반영한 차답게 포틀랜드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서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코너 입구에서의 반응성도 좋았고 하중이 한쪽으로 몰린 상황에서의

조향에도 적절한 반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좌우 회피기동에 있어서도 뒤가 과도하게 흐르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여주더군요.

핸들링이 뛰어나면서도 승차감이 괜찮습니다. 드라이버즈카이면서도 패밀리카로 부족함이 없는

서스펜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케보노 제품인 브레이크의 성능도 믿음직스럽습니다. 페달의 무게감이나 컨트롤도 좋고

내페이드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러 저널리스트들이 쉬지 않고 번갈아 타며 트랙을

공략한 뒤에는 제동성능 저하가 나타났으나 일반적인 패밀리카에 비하면 상당히 오래도록

잘 버텨준 것이었지요. 핸들링과 브레이킹에 있어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전륜구동(+AWD) 미드사이즈 세단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세그먼트에서 상당히 핸들링이 좋은 마즈다 6도 스즈키 키자쉬에게는 역부족입니다.

아마 마즈다스피드 6쯤 되면 어느 정도 견줄만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가격대가 좀 달라지죠.

스즈키 키자쉬 베이스모델의 가격은 2만달러 아래에서 시작되며 $22,000~$24,000 정도의

트림이 가장 많이 팔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가격대의 세단 중에 뉘르부르그링에서

테스트를 하며 서스펜션을 조율한 차가 이 차 말고 있을까요?

185마력을 내는 2.4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은 강력하지는 않아도 충분한 동력성능을 제공합니다.

0->시속 60마일 가속은 7초대 후반에서 8초대 초반으로 고성능차로 인식될 수준은 아니지만

패밀리카를 겸한 드라이버즈카로서는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사용되는 변속기는 6단 수동변속기와 CVT 두 가지며 AWD에는 CVT만 조합됩니다.











시승도중 세인트 헬렌스 화산 (Mount St. Helens)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 및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도 정감있었고 시승 이벤트의 드라이빙 코스도 상당히 아름다웠던데다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차여서 아주 기억에 남는 드라이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라도 달력 그림을 하나 새로 그리게 된 것이었지요.



내년 달력 10월에 들어갈 그림입니다.






포틀랜드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서의 주행






포틀랜드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는 화이트바디 상태의 차체도 전시되었고










차체 하부 구조를 볼 수 있도록 바베큐처럼 차를 걸어놓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키자쉬를 타보고 나서는 스즈키에서 물건 하나 제대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이벤트에서 경험한 것으로는 상당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실구매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게 될 지 모르는 일입니다. 차의 신뢰도와 리세일밸류 등의 문제 뿐만 아니라 딜러의

영업사원과 서비스 요원들의 태도 등 실제 구매자가 아닌 잠깐 시승을 한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부분도 상당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자쉬가 미드사이즈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 가능성과 잠재력은 충분히 있습니다. 시승 전에는 키자쉬로 차기 카 오브 더 이어를 노리고

있다는 스즈키 관계자의 말이 반쯤은 농담처럼 들렸으나 차를 타 본 이후에는 그 말 뒤에

숨어있는 자신감에 수긍할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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