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를 갈망하고 넘겨짚기 이전에 시승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동호회 질문란에 보면 가끔 어떤 차종을 선택해야 할지 묻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데 최상의 답변은 직접 시승을 해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달전에 E92 M3에 영혼이 팔려서 구입까지 갈 뻔 했는데 결정적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유중 하나가 시승을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시승차 일부가 폐차되고 중정비를 들어가서 시승차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토요일 포르쉐 대치센터에서 주말에 간단한 시승체험이 있었습니다. 포르쉐야 워낙 정평이 나있는 차라 성능과 아우라에 대해 큰 의구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내에서 워낙 잘 해주는 GTI에 비해 얼마나 뛰어날까 하는 궁금함과 더불어 아내에게도 포르쉐 바이러스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승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시승차로 911쿱, 911 4S cabrio, 카이엔이 있었지만 SUV 나 오픈탑, S와 같은 고출력 버전은 나중에라도 맞이할 가능성이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전혀 없었기에 가장 현실적인 911쿱을 선택했습니다.


시승코스는 자유, 시간은 1시간이 주어졌지만 주말 대치동 근처가 워낙 막히는 관계로 마땅한 코스를 정하지 못하고 아내가 조수석에, 아들을 뒷자석에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시내에서의 승차감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예전에 어느 분이 M3와 GTI를 비교할 때 GTI는 시종일관 딱딱하지만 M3는 얌전히 몰면 안락하고 빡세게 몰 때는 탄탄해서 팔방미인이고 일상용으로도 참 좋다고 했는데 911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반 서스펜션 모드에서 시내주행을 하며 포장상태가 불량한 곳을 지나거나 도로이음새, 둔턱을 넘을 때 GTI보다 부드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제 5세대 GTI는 완전순정입니다)


승차감을 제외하면 시내에서는 GTI와 성능상에서 큰 차이를 못느꼈습니다. 교통량이 많은 상황에서 급가속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주말 시내에서 차량을 헤치고 나가는 정도의 토크는 GTI도 크게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PDK가 DSG보다 진일보했으며 변속이 더 부드럽다고들 하시던데 그 역시 저는 크게 못느꼈습니다 다만 PDK가 경제적 순항을 위한 7단 기어가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DSG와 PDK의 변속느낌은 비슷했습니다.


가끔 시내에서 잠깐동안 급가속을 할 정도에서는 GTI의 S모드와 비슷하거나 칩튠정도 되있는 GTI의 성능과 비슷했습니다. 만일 911 S 라면 더 성능이 뛰어났겠지요. 하지만 기본형 911이라면 S모드의 GTI를 약간 빡세게 밟아주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시내를 다니다가 외곽순환도로에 올랐습니다. 앞이 뚫릴 때마다 급가속을 시도해 봅니다. S모드의 GTI 급가속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느꼈는데 속도계를 보니 실제로는 훨씬 좋은 가속력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안정된 하체세팅으로 인해서 실제 속도증가만큼의 체감토크나 가속감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말을 빌어보면 GTI는 작은 체구에 짜내며 약간 힘들게 가속하는 것같은 느낌이지만 911은 안정되고 묵직하게 여유로움을 느끼며 가속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속할 때는 911 특유의 리어엔진에 의해 뒤에서 들리는 엔진음과 더불어 약간 부밍음이 느껴지는 배기음의 특성을 보였습니다. GTI는 약간 가볍고 조용한 배기음인데 비해 911은 993때까지의 공랭식 음향을 약간 닮은 듯한 배기음을 보였습니다. 배기음 자체는 좋았지만 약간의 부밍음이 있는 것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스포츠 모드를 눌러보았습니다. 스포츠 모드는 PDK장착 경우 악셀레이터 페달의 민감도가 달라지고 (스로틀 맵핑), 변속기가 고알피엠을 유지하도록 설정되어 변속이 느려지며(GTI의 S모드와 같습니다) PASM(댐핑압 조절 서스펜션) 장착경우 서스펜션이 하드하게 세팅되며, 자세안정장치(PSM) 개입이 느려집니다.


스포츠모드에서 급가속을 해보니 아무래도 GTI보다는 훨씬 낫습니다만 GTI에 비교해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911 S라면 달랐겠지요. 아쉬웠던 것은 PASM이 장착된 차량이라면 칼질할 때 서스펜션이 얼마나 하드해지는지, 따라서 거동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느꼈을텐데 시승차량은 PASM이 장착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PASM 미장착 된 상태에서 칼질시 서스펜션의 느낌은 GTI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GTI의 롤링만큼 911도 그정도 롤링을 보이더군요.


이후 스포츠플러스 모드를 눌러봤습니다. 스포츠 플러스모드는 변속이 더 고알피엠을 유지하게 되어있고, 더 빠른 변속을 위해 변속충격을 약간 수반합니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급가속을 해보니 가속도 좀 빨라지지만 변속충격이 엄청나네요. 구형 M3의 SMG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급가속에 이은 급감속도 해보았는데 브레이크는 명불허전입니다. 확실히 잘 서는군요. 이 부분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잦은 제동을 통해 베이퍼락이나 페이드현상을 테스트해보면 좋았겠지만 그렇게는 못해봤습니다. 하지만 안봐도 비디오일거라는 믿음이 갔습니다. 워낙 정평이 나있는 포르쉐의 브레이크이니까요.


그리고 시승전반에 걸쳐 아내나 저나 공히 느낀 것은 기본형 시트도 착좌감 및 자세를 유지해주는 안정감이 참 좋았다는 것입니다. GTI 시트도 측면지지대가 작지 않아서 자세를 잘 잡아주지만 착좌감은 썩 좋지 않았는데 911의 시트는 팔방미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번 시승이 워낙 주말 교통사정이 안좋아서 현실적이고 세세하지는 못했지만 저 나름대로 포르쉐를 경험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911의 성능을 떠나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가족용으로 써도 크게 불편하지 않겠다는 것과, 뒷좌석을 접으면 적재공간이 나름대로 쓸 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이스하키를 취미로 해서 하키가방을 적재할 수 있는 여부가 중요하거든요)


다른 분들은 좋은 자동차를 시승하시고 오면 자신의 자동차에 약간 애정이 줄어든다고 하시던데 저는 시승을 마치고 GTI를 타고 집에 오면서 고속주행을 빼면 시내에서 재미있게 타는 것에는 GTI도 참 괜찮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911을 시승하면서 도로여건상 고속코너링을 해보지 못한 점. 후륜구동차의 예리한 핸들링을 맛보지 못한 점. PASM의 스포츠셋팅을 느껴보지 못한 점은 상당한 아쉬움과 궁금함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포르쉐브랜드의 럭셔리한 이미지, 스포티한 다자인, 독특한 배기음, 낮은 포지션 등이 주는 911의 감성은 GTI 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p.s 제가 워낙 운전실력이나 경험이 일천하여 좀 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비교시승을 못하고 느낌만을 적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제 의견에 대해 어떤 이견이 있으신지 덧글을 달아주시면 제가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제가 GTI 오너다 보니 GTI를 편애하고 911의 성능에 시원찮은 느낌을 적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911이 아주 훌륭한 차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911은 저의 드림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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