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자동차전문지 특집컬럼 준비를 위해, 로터스 코리아에서 갓 들여온 70대 한정판 엑시지S 240의 스페셜에디션인 브리티쉬GT 의 스티어링을 잡게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06년 FIA 유러피안 챔피언쉽 GT3 클래스에서.. 페라리, 애스턴마틴, 바이퍼, 포르쉐 997GT3, 가야르도 GT3와, 콜벳 Z06 GT3등의 수퍼라이벌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우승한 기념으로 생산된(07년) S240 의 한정판 모델로, 출력성능은 같지만, 올린즈 써스펜션킷과 경량단조휠, 어큐섬프 시스템이 탑재된 스페셜에디션입니다.





엑시지의 유려하고 강력한 디자인에 커스텀 스트라이프가 추가되어, special edition 의 고성능감을 더해줍니다.





1.8리터로 243마력을 내는 수퍼차저 엔진과 경량바디로 제로백 4.1초의거침없는 가속력에 풀버킷시트에 파묻히는 쾌감..가볍고 탄탄한 바디는 주행정보를 낱낱이 알려주어 '온몸으로 달리는' 드라이빙의, 황홀한 경험을 할수 있었습니다. 2way 올린즈 써스펜션과 어드반 A048 슬릭타이어의 감성은, 과연 무엇이 퓨어인지를 콕핏에 앉은지 단 1분안에, 확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시승은.. 십여년째 익숙한 스피드웨이 인근 와인딩에서 이루어져, 한적한 평일오후의 널럴한 도로에서, 나름 한계에 가깝게 몰아볼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이였네요.





브리티쉬GT는 AP레이싱 4포트 브레이크에 로터인치업이 되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답력과 감성을 보여줍니다. 차의 속도와 가감정도, 드라이버가 예측하는 브레이킹 정점을, 매우 정직하고 섬세한 답력으로 유추하게 만들어줍니다.










'무엇이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가..'
그동안 로터스가 던져준 환상과 기대감을 줄이기 위해, 운전석에 앉기전에 머리를 비웠습니다. 몇번의 드라이빙 행사도 있었고, 제가 하는일의 특성상..원하면 시승이 가능했지만, 미루고 있었습니다. 투어링카 레이스에 출전하고, 직접 접해보면, '하드코어'란 말에 별 두려움을 못느끼는게 사실입니다. 많은 미디어물들이 '감동적인 차'에 대해 논하지만, 궁극은 레이싱카라는 생각에.. 거만한 속내를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엑시지S240 의 한정모델이고, 런칭한 어느모델보다 퍼포먼스가 뛰어난 차라는 인폼은 받았지만, 특정차를 처음탈때 설레이거나 기대감에 부푸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전중 처음 브리티쉬GT에 오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사이드 롤바가 설치된 투어링카에 오를때도 몸을 잔뜩 오그려 어릴적 개구멍으로 학교를 들락거리듯 경건한(?)마음을 가졌었는데, 엑시지의 콕핏은 한술 더뜨는 입구 사이즈라, 나이에 비해 유연한 편임에도 요가와 스트레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가 앉은 그자리가 너의 세상이다..'
20 여년간 미술대학 입시생을 가르쳤는데, 실기시험까지.. 수능이 끝나고 2개월여간은 정말 실기실이 비좁도록 많은 학생이, 그려야할 석고 한개당 수십명씩 겹겹이 앉아 그립니다. 한녀석의 그림을 봐주려면, 겹겹이 앉은 녀석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의자한개를 더놓고 이젤과 화판사이의 좁은 공간에 함께 앉아 시범을 보이고, 수정해주거나 설명을 해줍니다. 그 광경을 밖에서 처음본 사람은 기겁을 하지만, 의외로.. 비좁은 틈속에 들어가 그림앞에 앉으면, 공간은 좁게느껴지지 않고..그리는 사람만의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치열한 입시상황과 주어진 공간에 답답함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 네가 앉은 그자리가 너의 세상이다." 란 말을 해주곤 했습니다. 입시장에서의 상황과 같기때문이였죠.

엑시지의 콕핏은 이미, 운전석에 들어가 앉는 과정에서 드라이버에게 겸손해질것을 강요하는 듯 합니다. 위아래 폭이 좁아 오른다리를 먼저 밀어넣고, 왼다리를 밖에 걸친채 상체를 구겨넣어 땅바닥에 붙은듯한 시트바닥에 엉덩이를 완전히 밀어넣고, 두께마저 넓직한 도어스커프에 한다리를 걸친상태에서, 한번 가벼운 심호흡을 해준 후(배둘레가 있는경우는 특히^^) 다리를 들어올려 클러치페달 근처로 구겨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자세를 잡고 앉으면 풀버킷의 완벽에 가까운 휴먼테크 형상과 스티어링의 충분히 가까운 위치.. 페달류의 거리는 다소 비정상인^^ 제 체형으로도, 액셀브레이킹웍과 힐앤토를 쓰기에 딱 적당한 포지션을 제공하고,  입장할때 강력한 장애물이였던 도어스커프는 무릎을 적절하게 오무려 기댈 수 있어, 스탠다드한 스포츠드라이빙 자세를 자동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냥 앉아서 벨트만 매면, 드라이빙행사 갈때마다 인스트럭터들이 의례히 행사전에 반복,주지시키는.. 그 쉬우면서도 출발하면 이내 흐뜨러지는 '어렵다는 자세'인 스포츠드라이빙의 기본자세가 자연스럽게 연출됩니다.

시동을 켜고 320 파이정도의 로터스 로고가 새겨진 스티어링을 거만하게 쓰윽 한번 돌려보려면, 꿈적도 안합니다. 두툼한 슬릭타이어여서 그냥 80년대에 운전하던 액셀이나 프라이드 논파워핸들과는 현격하게 차이날정도로 무겁습니다. 물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평균적인 여성의 팔힘으로도 돌릴만 하고요. 일단 여기까지에서.. 드라이버의 자세는 100% 달릴준비를 마치게 되는데, 주차공간을 빠져나오는데에 이미, 정확하게 9시15분 위치에 손의 그립에 힘을 주게되고, 아주 자연스럽게 퓨어스포츠카를 운전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국산차 매뉴얼에 적혀있는.. '시트포지션을 적당히 잡아 핸들상단에 손목이 걸칠정도 위치.. 무릎은 적당히 여유있게 구부릴 수 있는 거리가 좋고, 엉덩이는 시트끝에 붙이세요.' 란 설명같은건 전혀 필요없습니다. 엑시지의 시트끝에 엉덩이를 바짝 붙이지않으면 단단한 클러치 페달을 끝까지 밟을수도 없고, 다리구불기가 최적상태로 되면 자연스레 스티어링은 힘주거나 버티기 딱 좋은 위치에 오게됩니다. 양무릎의 자세는 적절하게 오무려 페달류를 조작하기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요.. 일단 여기까지 진행되면, 말이 필요없이 로터스의 화려한 레전드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드라이버가 됩니다. '그곳이 네 세상..' 이 되는거죠.
  
도입부까지..너무 상세하게 썼네요.
대부분 짐작하시겠지만, 사진촬영하느라 차의 각도를 조금씩 바꾸기 위해 십수번 오르내리면서, 여러번 느낀 상황이라 자세하게 언급해봤습니다.^^



오전에 비가 꽤 내려 풀스로틀 해보기 어렵겠구나..하고 염려했는데, 스피드웨이에 도착해 식사먼저 하고나니 어느새 쨍쨍 해가나고, 열기에 금방 길이 말라버렸더군요. 마성톨게이트를 반환점으로, 스피드웨이를 둘러감싸는 앞 뒤 외곽와인딩을 대여섯차례씩 방향을 바꿔 돌면서, 나름 노말한 한계까지 달려봤습니다.

적은 배기량임에도 엔진음이 우렁차고 남성적인 배기음과 진동감이 등덜미를 두들겨줘, 빠르지않은 속도에서도 익사이팅한 감흥을 주는건, 박스터와 비슷합니다. 스타트할때는 정확한 클러치 체결감과 충분한 토크로, 아이들링 상태에서 살짝만 건드려줘도 시동이 쉽게 꺼지지않습니다. 유격이 짧고 간결한 밋션기어노브의 변속 작동감은, "철컹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히 제위치를 찾습니다. 변속루트가 약간 비스듬히 되어있어 미쓰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중요한건.. 안들어가면 안들어갔지 애매하게 중간에서 버벅거리는 일이 없어, 듬직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스타트에서, 저중속 알피엠에선 충분하지만 위화감이 없는 토크감으로, 출력대 무게비로 인해 수퍼카의 발진가속을 보이는 엑시지에 대한 부담감을 한방에 희석시킵니다. 튀어나갈까 염려할 필요없다는 얘기지요. 천천히 알피엠을 올려보면, '이차가 과연 4초만에 100키로에 도달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차분하게 올라가지만, 조금 과감하게 액셀페달을 눌러주면 2,3 초도 지나지않아 다른세상에 진입하는듯한 박진감으로 변합니다. 거침없이 알피엠이 최대토크영역대를 지나 최고출력을 뿜어내는 8천이상 영역대까지..순식간에 상승하고, 뒤통수가 헤드레스트로 파묻히며, 기분좋은 종G가 목의 양쪽을 V자로 당겨주는 흉쇄유양근 전체에 뻐근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얼핏보기에 트레드패턴 형태만으로도 무섭게 생긴 어드반 A048 세미슬릭 타이어는 적당히 더운날씨에 노면을 손실없이 박차고 나갑니다. 버킷의 형상은 경기용 풀버킷에 비해 사이드어저스트가 많이 돌출하진 않았지만, 포지션자체가 밑으로 푹 꺼져있어, 코너링시 심리적인 안정감은 훌륭합니다. 빠른 코너링중에는 속도에 비례하게 무거워지는 스티어링감각이, 드라이버가 어느정도의 속도로 코너링 하고있다는 체감을 이퀄라이징 시켜줍니다. '이정도 빠르니, 딱 요정도 긴장하세요.' 라고 말해주는 듯 합니다.

믿음직한 그립의 슬릭에서 튕겨나오는 작은 모래알까지, 엑시지의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써라운드로 낱낱이 들립니다. 십여년 전 투어링카 경기를 뛸 당시엔 공도주행이 허락될때여서, 껍데기만 있는 경기용차를 압구정의 집까지 몰고 다녔는데, 그때 추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처음엔, 소음재가 전혀없어 차바닥에 튀겨오르는 모래알소리가 거슬릴지 모르지만, 마성으로 가는 신도로쪽으로 업힐 하는 중, 삼거리서 우회전하는데.."자르르르~" 하고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아..도로에 모래가 많이 깔렸구나~' 하고 긴장하며 스티어링과 액셀을 조절하게 되는 자신을 보며.. '이런..로터스는 낚싯대를 만들어도 손맛이 좋은 명품을 만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됐습니다. 드라이버는 노면 그립이 안좋아지는 상황정보를, 소리로 먼저 알게 되는것이죠.  

댐핑압이 단단한 올린즈 써스펜션킷은, 스트링웨이트와의 이상적인 매칭으로 노면정보를 실시간 전달해줍니다. 타이어의 어느위치에 돌기가 밟히는지까지 정확히 알수있고, 코너링 중 약간의 도로이음매에도 핸들을 어느정도 풀어야할지 날카롭게 보고합니다. 엑시지S240와  출력은 같지만, 브리티쉬GT 에만 특별히 더해진 올린즈의 이러한 노면 스캔기능은..엑시지를 더욱 빠른 랩타임으로 달릴 수 있게 해줄것 같았습니다. 이는..타이어 트레드 블록을 타고 올라와, 드라이버가 의식하고 생각해서 지시할 시간을 주지않고,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만드는것입니다. 물론 엑시지의 단단한 샷시강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노면정보는 외곡되어 전달되겠죠.

스포티한 차를 꽤 몰아봤지만, 코너진입과 탈출시 이렇게 리니어한 스티어링특성을 보이는 차는 없었던듯 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카이만S 정도가 있을까.. 코너링 중 미량.., 뉴트럴에서 오버성향으로 바뀌는듯하지만, 이 특성의 마진은 매우 적습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움직임이라서, 긴 중고속코너를 클리어하는 동안 드라이버는, 차의 동선을 계획하기 유리합니다. 그러나 결코 모든 코너가 만만하게 보이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깊으면 깊은 만큼 드라이버의 주의를 집중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A048 타이어는 리니어한 스퀼음을 만들어내 상태의 심각함 정도를, 드라이버에게 정확히 보고합니다. 한계가 높지만 거만하게 버팅기는게 아니라, 그다지 염려하지않아도 될 시점에서부터 간결한 스퀼사운드를 연출해줍니다. 물론 그립감도 리니어해서, 설질좋은 뽀송뽀송한 슬로프에서 마음편하게 엣징하는 기분으로 코너링을 즐길수있도록 정성을 다합니다. 처음써본 타이어라 한계를 몰라 궁금했는데, 녀석은 의외로 자상하게 자신의 포텐셜을 설명해주더군요.



스티어링의 피드백 퀄리티와 레벨, 댐퍼스프링킷과 타이어..필요한 만큼의 제동을 손실없이 이어주는 브레이크 성향은, 탄탄한 샷시를 기반으로 기가막힌 하모니를 연출합니다. 어느것 하나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그리 솔직할 수 있을까.. 엔진이 하는일, 트랜스밋션과 땅과 닿아있는 네바퀴.. 차에 붙어있는 각부위가 하는일들이 드라이버의 눈과 귀..엉덩이와 옆구리, 무릎, 목과 뇌까지.. 드라이버를 주체로 하는, 완벽한 중앙집중체계를 구축합니다. 왜 로터스가 엄청난 파워의 수퍼GT카들을 따돌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이, 그냥 브리티쉬 GT 를 타고 달리는 동안 무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듯 합니다.

이번 일요일 GTM 수퍼클라스에 출전하는 박정룡 감독님과 스피드웨이 피트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는 동안, 스피라GT 의 옆자리에 엑시지 브리티쉬GT를 한동안 세워두었습니다. 다음타임 스포츠주행을 들어갈 준비중인 스피라와, 사이시간에 잠시 그리드에 세워 스틸컷을 찍으려는 엑시지 GT 의 모습을 번갈아 보는동안, '무엇이 저렇게 로터스를 자신감 넘쳐보이게 하는가..'를 잠시 생각해보게 만들더군요.

만일 그대로 스피라GT.. 건너편에 있는 S2000 GTM 머쉰과 함께, 순정의 엑시지 브리티쉬GT를 몰고 바로 트랙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따라마실 수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시각의 냉정한 평가도 할수 있지만, 내가 엑시지 브리티쉬GT 의 오너라면.. 자상한 표정으로 그얘기를 끝까지 듣고나서, 그냥 씨익 웃어주고는.. 온몸을 꾸깃꾸깃 콕핏에 구겨넣고, Kenny Loggins 의 More we try가 mp3 입력된 오디오의 스위치마저 꺼버리고는, 9시15분 위치에 양손을 감아쥔채 휠스핀을 일으키며, 노면을 박차고 달려나갈거 같습니다.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