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를 타는 다른 대부분의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사브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나마나한 얘기겠지요. 그런데, 사브를 좋아하는 다른 많은 분들과도 제가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사브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 말고 몇 분 정도는 더 계시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 이러이러한 점들은 좋지만 그래도 역시 사브의 인테리어는 좀...." 이라든가, "인테리어는 너무 마음에 안들지만 다른 부분이 좋으니까 용서돼..." 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신형 9-3SS 출시를 기다리다가, 바뀔 내부 대시보드 디자인을 사진으로 미리 보고 바로 기대를 접고 구형을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금전적으로나 뭘로나 어떻게 따져보아도 분명 바보 짓이지요. 한두달만 기다리면  싼 금액으로 신형 차를 살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 바보짓을 했습니다. 기막혀 하실 분이 많겠지만 대시보드 디자인을 비롯 여기저기 조금씩 바뀐 신형의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요^^ 돈 일이천만원을 손해봐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 취향의 소산입니다. 전혀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인 얘기가 아니지요. 그러니 신형 9-3SS의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분들이 화내실 일 아니라는 것 미리 분명히 밝혀둡니다. 단지 제 눈에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우주의 각 별들만큼 서로 다르지요.

일단 이제는 구형이 된 제 2005년형 9-3SC(스포츠 컨버) AERO의 대시보드를 보며 얘기해 볼까요. (사진들은 테드 게시판상에서 강제 리사이즈 되어 찌글찌글하게 나타납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깨끗한 디테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호대기중에 한 손으로 찍은 사진이라 좀 엉망입니다만, 하여튼 오너분들 다 아시다시피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 제가 이 대시보드를 좋아하는 이유부터 밝혀야겠지요.

첫째, 심플해서, 둘째 우드그레인이 없어서, 셋째 아름다워서 입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쳐도 저 수많은 버튼들이 '심플하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실제로 각종 자동차잡지의 리뷰며 오너들의 사용기에도 저 대시보드는 '굉장히 난삽하고 복잡하다' 식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신형에서 개선되어 다행이다-식의 기사도 많지요.

그런데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대체 이 대시보드의 묘사에서 복잡함과 단순함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요? 예를 들어 이 차를 처음 타보는 구경꾼이거나 리뷰어의 입장에서는 일단 디스플레이 모니터 옆의 버튼들과 그 아래쪽 공조장치 조작부의 버튼들, 그리고 또 그 아래 CD체인저의 버튼들까지 총 세 덩어리의 버튼'무리'들이 '아주 많은 버튼'이라는 하나의 인상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가 이 차를 자기 소유로 운전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오너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일견 저 많아 보이는 버튼들이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다이얼식 버튼의 각 숫자단들을 각각 하나의 독립된 숫자 버튼이나 포지션 버튼으로 대체해 놓았을 뿐이기 때문에, 무슨 대단히 복잡한 기능들의 버튼별 할당을 외워야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그러므로 운전중 잘못 누를 수 있는 버튼-이라는 지적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 차를 처음 타는 리뷰어에게는 물론 그럴 수 있는 '걱정'이겠습니다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심플함과 복잡함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디자인의 '일관성'과 상관이 있습니다.

대시보드라는 전체로서의 대상이 일관된 하나의 디자인 폴리시를 가지고 있냐 그렇지 않냐 하는 것입니다.

사진의 9-3SS에 그 기준을 들이댄다면 답은 '가지고 있다' 입니다. 기본적으로 짧은 직선과 사각형들을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 작은 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각 버튼과 버튼들의 집단, 모니터, 수납된 상태의 컵홀더 등이 직선과 사각형의 기본 골격을 만들고, 통풍구의 조작버튼과 최소화된 몇 개의 작은 원형 다이얼이 직선 일변도의 디자인에 액센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곡선미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분명 이런 대시보드가 예뻐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직선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대시보드가 마음에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형 9-3SS의 대형 다이얼이 배치된 대시보드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대형 다이얼들의 채용은 일견 '심플해' 보이지만 사실 심플하지 않고(직선 위주의 통일감을 깨니까), 조작하긴 아주 조금 더 쉬울지 모르지만 그 대신 굉장히 덜 고급스러워졌고, 익숙하긴 하지만 국산차나 다른 수입차 대부분의 대시보드와 너무나 똑같아 지루합니다. 사브는 사브만의 사브라야 한다-가 사브에 대한 제 기본적인 기대입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전통-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시 덧붙이지만 '저에게는' 말이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9-3SS 대시보드의 재질/질감 얘기를 하자면, 결론부터 말해서 '불편하고 비실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질감이 좋다' 입니다. 벗져기기 쉽고 먼지 잘 붙는 저 표면 처리는, 그대신 다른 차가 주지 못하는 검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멋을 주니까요. 무광의 질감과 사브 디자이너들의 고심이 배어있는 촉감은 다른 차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2단공중제비를 넘으며 튀어나오는 사브의 컵홀더를 이세상 다른 어떤 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척 보면 보이는대로 이 차엔 우드그레인이 없습니다. 우드그레인 좋아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그 점도 꽤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만, 저는 우드그레인이 없다는 이유로 이 차를 선택했습니다.

나무,라는 소재는 사실 매우 고급스러운 소재입니다. 단, 그것이 고급스러운 소재로서의 나무에 어울릴만한 감성품질과 가공기술이 수반되는 것을 전제로 하였을 때 말이지요. 이전 세대 대부분의 국산 자동차에 덕지덕지 붙인 싸구려 우드그레인은 몇 천만원 짜리 차를 순식간에 일이만원짜리 장난감처럼 보이게 한다고 저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요 몇 년 사이 국산 중대형 고급 승용차에 채택되는 무광이나 반무광 우드그레인은 꽤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우드그레인과 현대적 자동차 디자인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왜 모든 차종 모든 차급에 그렇게 덕지덕지 우드그레인을 도배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메탈그레인이나 카본파이버 소재의 장식재도 제 눈에는 다르지 않습니다. 화려해지고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겠다고 그런 이질적인 소재를 잔뜩 갖다 붙이지만 그건 진짜 아름다움이나 세련됨 보다는 경박하고 값싼 취향을 드러내는 기능을 할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9-3SS의 인테리어에 최소한으로 사용된 메탈릭 실버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포인트 컬러로 존재하면 좋을 그 선을 지키고 있어서 좋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있었다면 투스카니나 미니류의 트렌디한 화려함이 되었을 것이요, 여기서 조금 부족했다면 골프나 구형 볼보의 조금은 맥빠지는 심심함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때 그 아름다움은 말하는 이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한정시켜 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사람에겐 밝고 선명한 일본차의 계기판이 아름답고, 어떤 사람에겐 부티 줄줄 흐르는 럭셔리 세단의 고급스런 우드그레인이 아름답고, 어떤 사람에겐 번쩍거리는 크롬몰딩 장식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꼭 자동차가 아니라도 그 전에 이미 스칸디나비안 반도 사람들의 미적감각에 감탄해 왔습니다. 오디오 기기와 사진기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각종 소품들 중 다수가 스웨덴제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고른 게 아니라 고르고 나니 공교롭게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사브를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일종의 자연스러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샤워 후의 애인 피부같은 실키한 촉감의 표면질감,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색과 소재가 만들어내는 단일감, 자칫 상투적인 평면 구성이 되기 쉬운 자동차 대시보드 디자인에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내는 별도의 SID, 다른 어떤 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투헬기의 계기판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버튼 배치, 우아한 아치를 그리는 주차브레이크 레버와, 애정이나 관심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찾기 힘든 자리에 숨겨진 시동키 입구, 고졸하기까지 한 통풍구, 요즘 유행하는 인위적인 센터페시아 각도비틀기가 아닌 자연스럽게 운전자쪽으로 모아져 운전자를 감싸듯 안아주는 배치, 밤에 미등을 켜면 가을밤의 별자리처럼 펼쳐지는 초록색 불들...

이 중 많은 요소가 2008년형에서는 사라졌거나 절충되었다고 아쉬워하는 건 저만의 값싼 감상이거나 흔한 회고조의 탄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쓰면 유치한 연애편지가 되겠지요? 그러니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아, 이 말은 빠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안되는 당신이 있는 것처럼
이 차,가 아니면 안되는 이 차가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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