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많은 매니아들의 화두가 되고 있는 폭스바겐 골프 GTi를 시승했습니다.

시승차는 은색 3도어로 적산거리가 10,700여km를 뛴 차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 적산거리면 시승차로는 적지 않은 거리이고, 특히나 GTi류의 시승차는 밟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시승하는 차라 차의 컨디션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또한, 여기 저기서 GTi 시승차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듣기도 했었구요.
시승 당시에는 브레이크 단선 경고등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실제로도 한 쪽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우선 GTi의 디자인은 골프 기본형에 17인치 휠과 트윈 머플러, 매쉬형 그릴 그리고 빨간색으로 라이에이터 그릴을 감싸고 있는 몰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골프 매니아가 아닌 저에게는 항상 골프는 질리지 않는 컴팩트한 디자인이 다소 재미 없게 느껴져 왔었습니다.
5세대 골프 또한 4세대보다는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실 디자인에선 크게 멋있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대 어느 GTi보다는 가벼운 터치만으로 GTi의 존재감을 살렸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의 폭스바겐 차들이 예전의 보수적인 디자인에서 좀 더 나아가 좀 더 세련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경박하지 않아서 보기 좋습니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려니 오랜 만의 3도어를 타는 지라 안전벨트 위치부터 좀 생소했습니다.
GTi의 시트형상은 차의 성격에 걸맞게 싸이드 써포트가 튀어 나와 있는 버켓형이지만, 실제 시트 자체는 꽤나 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도 한 덩치 하는 편이지만, 시트 자체는 상당히 여유가 느껴졌고, 덩치가 작은 분들께는 시트가 지나치게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타이트하게 조여주는 것도 괜챦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그란 레버의 DSG 시프트 레버와 스티어링 휠에 달려 있는 쉬프트 패들, 알루미늄 패달을 제외하면 일반 골프와 실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골프가 보여줬던 일상적인 용도에 크게 부족함 없는 실내공간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차를 싫어하는 취향이라 골프의 패키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여겨 볼 점은 뒷좌석도 버켓 형태로 시트를 해 놓았기 때문에 실제 5인 승차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차의 성격도 그렇거니와 골프의 실내 크기가 5인이 편하게 승차하기에는 다소 작기 때문에 이러한 패키징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프린스 이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다이얼식 등받이 조절은 보다 정확하게 시트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합니다.
다만, 차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뒤로 뉘우기에는 실로 많이 노력이 필요합니다.
GTi정도의 성격의 차라면, 무게도 나가고 고장의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는 전동식 시트보다는 현재의 수동식 시트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썬루프의 작동감도 우수했고, 각각의 조작버튼들도 직관성이 좋은 편이어서 새로운 차를 작동시키는 위화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덴마크 다인제로 알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은 사실 제 기대보다는 깨끗한 음질을 보여주긴 했지만, 최근 수준이 높아진 국산 순정오디오보다 음질은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시승에 들어가니 생각외로 응답성도 민감하고 고rpm까지 쉬프트업이 안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S모드로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터보엔진이기에 정지상태에서의 발진에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차량보다 휠에 토크가 적게 걸리기도 하겠지만, 토크 스티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정 컨티넨털 스포츠컨택 타이어의 접지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S모드에서의 변속은 일반 오토매틱의 일상적인 파워모드보다도 적극적으로 고rpm을 사용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도 활발한 가속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D모드로 놓고 주행해 보니, 나긋나긋하게 운전하면 터보가 터지지 않는 영역, 즉 약 1500rpm 이하의 영역으로 주로 운전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거의 40km/h에서는 4단이 물릴 정도로 연비 위주의 주행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차의 성격에 걸맞지는 않게 천천히 몰게 되면 연비는 상당히 잘 나올 것 같습니다.
워낙에 FSi엔진 자체가 저rpm에서의 토크도 괜챦은 편이라 토크가 특별히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저rpm에서 FSI엔진은 약간 그르렁대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디젤 차를 타는 듯한 느낌도 들기는 합니다.
수동모드로 변속을 해 보면, 지나치게 낮은 rpm에서는 쉬프트업을 해도 DSG는 쉬프트업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법 변속 로직은 똑똑하고 일반 AT차와 다른 위화감은 크게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고속화도로에 접어 들어서 본격적으로 밟아보고 나서야 왜 많은 사람들이 GTi에 대해서 열광적인 평을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D모드에 넣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DSG는 1단이 아니라 2단, 때로는 3단을 스킵해서 쉬프트 다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파사트의 아이신제 6단 팁트로닉은 스킵쉬프트를 하게 되면 변속시간이 무척 길어서 답답함을 느끼게 하지만, DSG는 단수를 확인하기 전에는 몇단을 건너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작동합니다.
수동모드도 적극적으로 사용해 봤는데, 변속시간이나 질감에서는 최고 수준임을 부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BMW의 ZF6단 미션과 비교해 봤을 때, 변속시간이 조금 더 빠르다는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정말로 여러 시승기에 나오는 얘기대로 눈깜짝할 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어찌 되었건 폭스바겐의 DSG는 화두가 될 만큼의 멋진 퍼포먼스를 낸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미형을 들여와서인지 생각보다 GTi의 승차감은 양호한 편이고, 일상생활에서도 거의 불편함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연 내 운전실력으로 GTi의 한계를 끌어낼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과격한 움직임에도 전혀 불안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무척 과격하게 급가속 및 칼질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더 바랄 것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터보엔진답게 실용영역에서의 토크가 좋고, 이에 따라 일상적인 가속은 무척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좀 밟았다 싶으면, 바로 160km/h 정도는 순식간에 가속이 되었습니다.
터보레그도 느끼기 어려웠고, 가속의 질감 또한 무척 좋아서 플랫토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200마력의 출력의 한계가 있는 차인지라 180km/h부터는 가속감이 조금씩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지만, 200km/h까지 가속하는 데에는 답답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날 무리해서 내본 최고시속은 215km/h였는데, 그 속도에서의 가속감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대략 230km/h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가속될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만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GTi 시승을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스티어링이었습니다.
딱 적당한 정도의 무게감을 어느 속도 영역에서나 유지해 주고,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은 세밀한 조작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승하는 내내 자동차 오락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D모드의 주행에서 연비 위주의 주행모드와 스포츠 주행 사이에 중간 정도의 쉬프트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동승자를 태우고는 그다지 속도내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밟으면 엄청난 엔진음과 배기음을 내뿜게 되는 GTi가 동승자를 무척 불안하게 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수동모드로 단수를 조정하면서 가게 되면 제가 원하는 rpm을 사용하면서 갈 수 있겠지만, 기왕에 자동변속기능이 있는 DSG라면 이런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드코어한 주행은 S모드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계기판의 구성은 스포티한 차 치고는 시인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파란 색 조명 자체가 시선을 산만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고, 쉬프트 인디케이터의 글씨는 크기도 작고,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 아닙니다.
특히, 속도계의 레터링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GTi정도의 가격에도 가속성능이 우수한 차를 고를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SM7 3.5나 TG 3.3도 GTi에 크게 뒤지지 않는 가속성능을 낼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모는 어코드 3.0도 사실 가속성능에서는 GTi보다 그다지 뒤질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이빙 필링이라는 측면에서 GTi는 왠만한 쿱보다도 더 스포티하고, 일상적인 용도에서도 큰 불편함 없이 탈 수 있는 차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현대차도 매우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수요을 감안했을 때 이 비슷한 성격의 차는 개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골프의 고급형 가격에 200여만원 추가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GTi의 가치를 몸소 체감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