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이 데뷔할 때는 3.4리터 300마력이었으나 2001년식부터 3.6리터로 배기량이 커지고 출력도 320마력으로 늘어났습니다.

996은 911최초의 수냉식 엔진이고, 여러가지 부품을 복스터와 공유하면서 상당히 모던해지고 세련되어지긴 했지만 993까지 지켜오던 여러가지 전통이 사라져 실망한 매니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들어 프레임레스 도어가 적용된 점이나, 패달의 방식이 일반차처럼 위에 매달려있는 방식(993까지는 바닥에서 솟아난 방식), 그리고 대시보드의 디자인 역시 911의 수십년 전통과는 상반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물론 997에서 996의 그것을 계승하는 분위기니까 996은 911의 끈질긴 생명력을 고려했을 때 데뷔자체가 911의 turning point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승차는 2002년식 카레라 자동변속기 사양이고, 새차나 다름없는 최상의 상태였습니다.
자동변속기 사양이 아쉽긴했지만 그래도 이번에 996으로 오랜만에 고속으로 달려볼 기회가 있었던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996의 자동변속기는 1~4단까지는 거리가 먼 편이라 2단 120km/h, 3단 185km/h, 4단 250km/h에서 5단으로 변속되면 5단 5800rpm에서부터 가속이 시작됩니다.

즉 1~4단이 수동의 1~5단까지의 그것을 거리를 넓혀 배치해둔 형태이기 때문에 자동변속기는 순발력에서 수동변속기를 절대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단 수동의 6단기어비와 자동의 5단 기어비는 기대보다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초고속 상황에서라면 큰 차이를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에어컨 켠 상태에서 5단으로 넘어간 후 6600rpm에서 295km/h를 마크합니다

자동의 경우 1~4단까지는 시프트 업이 되면서 회전수가 너무 많이 떨어져 탄력이 시원하게 붙는 느낌이 수동에 비해 덜하지만 4단에서 5단으로 넘어갈 때는 기어비가 가까워 5단에 들어가면 초고속을 향한 힘찬 탄력이 시작됩니다.

996의 자동변속기는 우직한 것 빼면 시체일 정도로 단순하고, 느립니다.

수냉식으로 바뀐 엔진은 순정 머플러의 경우 유럽사양이 아니라면 시내에서 상당히 조용하고 지나치게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부드러운 음색도 회전이 올라가다보면 5400rpm에서 배기음이 두배는 증폭되는 느낌을 받고, 레스폰스가 한번 더 살아나는데, 제 생각에는 가변캠이 고속영역으로 작동하는 포인트가 아닌가 판단됩니다.

스포츠 머플러를 경험해본 저로서는 911의 수평대향의 사람 미치게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포르쉐 스포츠 머플러가 가격 이상의 가치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996의 고속에서의 핸들링이나 안정성은 997보다 조금은 온화합니다.
때문에 고속에서 가속패달을 놓는양에 따라 코너에서 자연스럽게 스티어링을 살짝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운전해야하는 911의 특성은 여전히 강하게 살아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속으로 코너를 달릴 때 가속패달의 힘을 아주 약간만 풀어도 머리가 안쪽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가속패달을 놓을 때 차선을 넘지 않기 하기 위해서는 스티어링의 미세조정으로 살짝 푸는 조작이 가해져야한다는 뜻입니다.

이 동작을 자연스럽게 잘하는 운전자는 카레라를 그래도 이해하면서 다룬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그렇지 않은 운전자가 운전할 때는 좌우로 움직임이 심한 몸놀림에 휘둘리게 됩니다.

고속코너에서 범프를 칠 때는 997시승기에도 언급했듯이 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폭이 큰데, 이는 앞뒤의 무게차가 크기 때문에 함께 떴다가 착지할 때 밸런스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고속코너에서 바운스가 있을 때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고, 특히 빗길에서 911이 위험한 이유도 짧은 스트록과 무거운 후미가 부정적인 조화를 이룰 경우 911은 상당히 위험한 차로 바뀝니다.

터보처럼 순식간에 말도 안되는 속도로 올려놓는 파워는 아니라해도 오르막을 꾸준히 280km/h를 마크할 정도로 뒷심도 있고, 엔진이 큰 힘 안들이면서도 쥐어 짜는듯한 드라마틱한 가속을 선사하기 때문에 320마력이라는 출력 이상을 즐기는 느낌을 선사합니다.

묵직한 스티어링 휠은 고속에서 더욱 더 돌덩이같은 느낌을 주는데, 차의 전반적인 움직임이 무게중심이 극히 낮은 차를 다루는 느낌 때문에 스티어링을 통해 더욱 위에서 아래를 내리누르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911은 어떤 세대이건 간에 정말 훌륭한 스포츠카이고, 정말 개인적으로 가지고 싶은 차종입니다.

복스터와 카이엔이 성공적이어서 997과 같은 차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저뿐 아니라 여러 잠재 고객들에게 크나큰 행운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넉넉한 자금에 힘입어 아이덴티티와 상품성을 타협하지 않아도되는 절대 안정시기에 나올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후대에 좋은 샘플로 남을 것입니다.

시승기회를 주신 부태성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testkwon-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