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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하게도 선뜻 시승의 기회를 내어준 군자에게 감사하며
전 세계 바퀴 매니아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GT-R의 간략한 시승기를 적어볼까 한다.
 
모자란 필력에 돌을 던지더라도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세상의 만물이 모두 자신의 세계를 갖고 일평생을 살거늘, 어찌 내 생각이 남과 같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돼지같은 외모는 논외로 하겠다. )
 
 
4단까지의 가속은 가히 황홀스럽다. 이제껏 경험했던 500마력 언저리의 AMG들이 시도 때도 없이 ESP경고등을 흥분 시키며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튕기며 출발 할 때 GT-R은 타이어 마찰음 한번 내질 않고 기가막힌 트랙션으로 가속한다. 200KPH를 넘어 쉴새 없이 가속하는동안 빈혈의 증세와 비슷한 어질어질함에 열심히 나불대던 부리는 닫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단, 엄청난 전면 투영면적(생김새를 보아 추측하기로..)과 비교적 모자란 파워(?)와 육중한 파워트레인 덕택인지 250KPH가 넘는 영역에서의 가속은 조금 밋밋한 수준이다. 290KPH를 넘어 300KPH를 기대하며 스티어링 휠을 쥐어 짜는 시간은 마치 알코올이 충만했던 지난 밤의 기억을 거슬러 마누라에게 잔소리를 들어먹는 시간 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
 
넉넉잡아 10km의 직선구간만 확보된다면  계기판상 310KPH정도는 가뿐히 마크할 수 있지만, 다음에 또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반드시 여분의 속옷을 준비해 갈 것이다.
 
 
1/4 마하 근처의 고속 투어러로써는 약간의 부족함이 보이긴 하지만, 이 정신나간 백돼지 녀석을 꼬부랑 산길에 풀어 놓는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당신이 어떤 코너링을 상상하던 그에 가장 근접한 몸놀림을 보여줄 수 있는 차는 단연코 GT-R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포텐셜을 지니고 있다. 섀시 강성, 파워는 차치하더라도 CP 이후의 가속에서 그 당당한 트랙션을 경험해 본다면 닛산 매장에 던져주고 온 100만원 다발 160개에 대한 미련은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GT-R로 빠르게 코너를 돌아 나가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진입 속도로 CP를 향해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것이 chapter 1쯤 된다 할 수 있겠다. 도저히 언더스티어로 코스 아웃을 해야 할 진입 속도임에도, 이 돼지 녀석의 머리는 꿋꿋이 CP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은 이르다 싶은 시점에서 브레이킹을 끝내고 용감히 가속페달을 사뿐이 즈려밟아대면 대단히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이미 슥삭! 탈출라인을 향해 정렬하게 된다.  아주 약간의 카운터 내지는 제로 카운터면 매우 매력적인 탈출라인을 확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사뿐히 붙여주고 그저 가속페달을 힘차게 후려 밟아주면 한 코너가 끝이 나지만,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성취감에 도취해 있다가는 순식간에 다가오는 다음 코너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돛대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며 렉카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이싱 카트 스럽지만 파워가 부족했던 로터스, 혹은 뚱뚱한 궁둥이 속에 주먹질 해대는 심장을 싣고 있는 포르쉐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탈출 가속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후... 비록 휴지통에나 버려질만한 졸문을 끄적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시간의 감동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끄집어 내려니 심박수가 높아지고, 혓바닥 안쪽이 심하게 건조되어 따갑기 까지 하다.
 
변속기의 경우 일단 상당히 시끄럽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려 2700여만원의 가격표를 달고 있는 비싼 녀석인 만큼 오너로 하여금 녀석이 제 할일을 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듯 녀석은 갈갈갈, 으르륵, 그르륵 분주하게 움직이는 티를 낸다. N.V.H 따위에 컴플레인을 하기 위해 이 차를 살 대인배는 없길 바랄 뿐.
업시프트는 꽤나 느낌이 훌륭하지만 연비모드로 돌입하기 위한 연이은 업시프트(더블클릭)는 절대 인식하질 못한다. 자칫 보조석의 그녀에게 경망스런 당신의 오른손 놀림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한 단씩 올리길 권한다.
시내주행에서의 변속 로직은 조금 어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GT-R이라는 세 글자에 용서가 될 수준이다. 단 불만이라면 DCT내지는 PDK만큼의 그럴듯한 다운시프트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남대로의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어여쁜 아가씨가 맑고 고운 힐앤토 사운드를 알아들을 리 만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빠르고 확실한 다운시프팅에 대한 갈증은 스포츠 드라이빙에서도 여지없이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몇일간에 걸쳐 꽤나 긴 시간동안 시승하였지만, 이 형편없는 몸뚱아리와 글주변으로는 느끼고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마스터님의 시승기에서 거침없이 다뤄주시리라 믿는다.
 
 
 
 실구매고객층의 가장 큰 고민이라 할 수 있는 워런티의 경우, 이런 저런 소문들처럼 개똥같지는 않은 듯 하다. 가장 무서운 점이 VDC 인데, 만약 누군가 남의 GT-R을 시승할 기회가 생간다면 퍼포먼스를 위해 VDC를 끄고 주행할 경우 바로 모든 워런티가 소멸된다는 것만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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