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0년 중반에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 학교에서 유학으로 제가 정식 4년을 마치고 졸업한 사람으론 첫번째로 기억합니다.(제 자랑하려는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LA근교의 모 학교가 국내 언론에 막 알려지고 많은 자동차 디자인 관련 유학생들이 서부로 몰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였습니다.

자동차 디자인 관련 정치를 하려면 서부로, 자동차 그림에 미쳤다면 동부로 라는 말이 자동차 디자인 관련 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입니다.

 

90년 중반 IMF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한국에 귀국하여 서울근교의 기아자동차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에 대학교 수업시간만도 못한 수준의 일들을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자신들의 100% 국내디자이너의 힘으로..란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고객에게 판매하는 자동차가 아닌

자신들만의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단 기아뿐만 아니라, 현대, 대우 동일하다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가끔 얇팍한 기사로 국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몇몇사람들이

미국 GM에서 어쩐다카더라는 기사를 보면 참으로 욱~~ 합니다.

가끔 이곳 테스트 드라이브에 글을 올리는것에 욱~~~하여 본의 아니게 독설을 날릴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도 있고, 욱~~ 하는것도 지겨워 준회원에 행복해 하며 이곳을 기웃거립니다.

 

중간은 각설하고....

 

희망찬 2000년도에 접어드는 시기에 저는 과감하게 자동차 업계를 떠났습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자동차를 떠난 제 삶은 고통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거짓말, 남의말 옮기기, 동료 이용하기등 연구소가 아니라

권모술수의 모든 기술을 배우는 집합체를 떠났다는것 자체가 저에겐 다행이였습니다.

연구소, 기자, 자동차 영업관련 종사자....그들이 왜 그럴까요?

짧은 지식과 업무에 대한 문제시 책임회피의 가장 좋은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업계 모든 사람들에 염증을 느꼈기에 2005년까지 5년을 조용히 제 자신과 제 주변을 즐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곳 테스트 드라이브의 회원 한분이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용건은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리한 인연이 되어 저의 진로지도?를 받고 지금은 제가 다녔던 디트로이트 모교에 잘다니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관려된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지만,

요즘 덥거나 쌀쌀해지는 저녁이 되면 동쪽에서 날라오는 비행기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제 전화로 이번 겨울방학에는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이루지못한 정열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일면무식의 젊은 친구의 미국 유학을 도운것은

제가 할수 있는 마지막 정열을 불태울수 있던 기회였는지도 모릅니다.

 

현실이 정의실현만되는 교과서적인 이상사회가 아닌점은 안타깝지만,

이승민님의/ 글을 쓰지 않는 이유가 당신때문 입니다가 아니라, 당신같은 사람이 있기에 끝까지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밑에 17539번의 유승민님의 글을 보고...그래서 유승민님은 글을 쓰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래전 쌀쌀한 밤에 강남 변두리 주유소 지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닛싼 GT-R과 폴쉐에 대한 이야기로 반짝이는 눈방울과 불그스래한 빰을 맞대고 정열에 붙태우던 젊은이들을 기억합니다.

 

 테스트 드라이브의 인연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심한 1인입니다.

차후 한국에 오시면 제에게 소주한잔 대접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