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형으로 등장한 푸조 508의 차체 디자인은 지금까지 봐 왔던 푸조 차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물론 필자의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푸조의 승용차들은 매우 개성적이고 색채가 분명한 푸조 만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2006년에 등장한 푸조 207 같은 모델들은 앞 범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사자의 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노즈(nose)의 디자인,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헤드 램프의 디자인으로 다른 메이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전에도 푸조의 개성은 아주 뚜렸했었다. 1978년쯤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립 생산되었던 푸조 604는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최고급 승용차였다. 그런데 604 역시 다른 메이커들의 고급 승용차와는 다른 프랑스의 감각을 보여줬었던 차로 기억한다. 특히 푸조 604차량의 앞 후드위에 사다리꼴로 속도감 있게 새겨진 「604」라는 로고는 매우 신선했었다.

프랑스 영화 ‘택시(TAXI)’에서 등장했던 푸조 406은 다른 유럽차들을 무미 건조한 차로 보이게 할 정도로 독특한 성격의 표정을 가진 앞모습으로 푸조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준 모델이었다. 아마도 그 시기가 푸조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에 치중하는 일본차의 디자인이나, 기능적이고 냉정한 독일 차들의 디자인과는 다른, 독특한 얼굴을 가지면서도 직선적인 디자인으로 고성능을 표현한 직관적인 이미지의 푸조 디자인은 프랑스의 예술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시기의 푸조 205 역시 성능이 뛰어나고 차체 디자인은 어느 메이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함으로 개성 강한 소형 승용차로써 마치 ‘작은 고추’ 를 연상시키는 성격으로 건재했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세대가 바뀌어 2000년대 초반부터 곡선화 되기 시작한 푸조의 차들은 오히려 색채가 모호해지는 듯 했었다. 물론 「펠린 룩(feline look)」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차체 디자인은 푸조의 특성을 나타내주기는 했지만, 멋보다는 개성에 그치는 정도였다. 넓은 측면 유리창과 마치 크게 입을 벌린 듯 한 이미지의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의 차체 디자인은 성숙한 이미지를 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 시기의 푸조 승용차들은 실제로 필자가 차를 몰아 봐도 운전석의 인터페이스가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새로 등장한 508은 그런 푸조의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역할을 맡았음이 틀림없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매우 성숙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고,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알맞은 디테일이 있는 숙련된 디자인이다. 차체의 형태나 선의 사용에서 밀도 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독일차의 느낌과 일본차의 느낌을 섞어놓은 ‘잡탕’ 같은 느낌도 느껴진다. 물론 그 덕분에 새로운 푸조 508의 시각적 품질감은 이전의 푸조 차들에 비해 괄목할 수준이다. 게다가 차체 스타일도 요즈음의 추세에 따른 ‘트렌디(trendy)’한 느낌이 있기는 하다.

물리적 고품질을 따지는 소비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기에, 시각적 품질이나 디자인의 완성도에서는 이전의 푸조 승용차들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푸조 만의 개성적 이미지에서도 달라진, 조금은 희석된 모습이다. 바라건대 앞으로 여기에서 더 희석되는 일은 없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