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으나 없으나 매주 모이는 지인들과 유례없는 일요일 오전 스케줄을 소화한 후 세차중 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나 이따가 미니 시승하러 갈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나서며 이번 기회에 주변에 모여있는 관심 있던 다른 차종들도 시승해 보리라 맘 먹었습니다. 주 5일 근무는 달나라 얘기고 따로 야근의 개념도 없는 직종이다 보니 이제야 기회가 왔습니다.

정작 미니는 매장의 스케줄 문제로 전시차량 구경만 하고 어제의 스케줄을 주관하신 이대기님의 관심 차종인 GTI를 보기위해 VW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GTI GTI GTI... 이제는 따로 무언갈 보지 않고도 들은 얘기 만으로 이게 좋더라.. 누구는 저게 불만이더라가 줄줄이 나올 유명세의 스타를 대면 하였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GTI를 향한 수많은 찬사를 나열한 리스트 중 상대적으로 아래 그룹에 위치하던 '넓고 편안한 뒷좌석' 이었습니다.

'트레드는 넓어도 다른건 다 낮거나 작고 짧아야 운동성능이 좋다' 라고 막연히 믿고 있는 부류가 운전을 즐기기 위해 고르는 차종의 일반적인 특징인 좁고 불편한 뒷좌석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이 GTI의 운동성능과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대단할 듯 합니다. 시승내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일요일 오후 시내 도로상황은 제 수준의 초보자에겐 동력성능을 평가할만한 기회를 좀처럼 주질 않았지만 다행히 간간이 3단 까지의 가속은 가능했습니다.

자동차를 '요리'라고 하고 휠파워 200마력 내외의 FF 차량을 '김치'라고 한다면 저는 간혹 주변에서 조예 있는 '김치 애호가'로 오인 하시는 분들도 있을만큼 '김치'를 즐겨왔기 때문에 스스로도 '김치맛은 대충 다 봤다'라고 착각속에 살았다는 느낌.....
GTI의 초반 가속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한계까지의 경량화와는 거리가 있는 중량에 4명의 탑승자, 레귤러 > 프리미엄 주유의 시승전용 차량임에도 1,2 단의 펀치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김치를 담글 때 소금의 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확히 언제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익고나서 꺼내 먹을 때 간이 어떨지를 완벽히 알고 있는 조리사의 '김치' 이더군요. 그간 자동차에 관해 자신있게 할 수 있었던 말이라곤 '그로스 파워 200 FF의 직진가속을 꼭 타봐야만 아느냐?'정도 였던 제 입이 닫히는 순간이었습니다.

S 모드 DSG의 쉬프트업은 각 단 마다 레드존을 정확히 200정도 상회하는 지점을 때려주는 시각효과를 연출하였고 정확한 미팅의 느낌에 비해 심심한(?) 변속 충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단 수동이 아닌 DSG를 선택하면서 쉬프트업 때마다 굳이 패들 쉬프트를 이용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더군요.

현대의 H-matic도 제대로 다뤄본 경험이 없는 부족한 내공탓에 짧은 구간 시승으로는 다운 쉬프트의 제어는 평가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만 4명의 탑승자 때문인지 시승차만의 문제인지 감속시 쉬프트 다운을 시도할 경우 회전수 보정의 느낌은 들었던 만큼의 감흥은 없더군요. 강원도로의 여행을 국도를 선택하여 다녀오는 경우 돌아오는 길의 핼앤토 감각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스피드와 부드러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이 때 상태좋은 GTI의 그 유명한 DSG와 '동승자의 편안함'을 평가기준으로 한 힐앤토 배틀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잠깐 일었습니다.

서스팬션의 느낌과 선회감각은 내공상 타보고도 모르는 수준이기 때문에 패스입니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렉서스 매장입니다.
GTI와 비슷한 가격대에서 서로다른 성격의 오너들을 공략하고 있는 IS250 또한 이날 처음 접하였습니다.

실내의 인터페이스에 관해 이것저것 살펴보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있는 내공이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나름데로는 그렇게 매달려 살아 왔음에도, 동력성능 외의 부분에선 여름에 에어콘만 있으면 된다로 일관해온 저의 편협한 자동차 생활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처음이었습니다. 무슨 스위치가 이렇게 많은지.. 사실 GTI도 스위치가 많다 라고 느꼈는데 IS는 더 많더군요. 날씨가 날씨여서 에어컨 온 오프만 확인하고 체험에 들어갔습니다.

VW과는 달리 딜러분이 동승을 하시더군요. 다음으로 방문했던 아우디에서도 VW과 마찬가지로 키를 내주셨는데 두 딜러에 비해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탑승자 3명의 상태로 길지 않은 루틴 시승코스만을 체험한 시간이 아쉽지만 메이커의 마케팅 방향, 환자들의 동력성능 평가와는 조금 떨어져 수많은 렉서스 오너들이 칭송하는 정숙성과 안락함에 신경을 집중 했습니다.  

렉서스 엔트리 모델의 안락함을 넘지 못하는 플래그 쉽 모델을 가진 메이커도 있겠구나 느꼈다면 과찬일까요? 노면의 충격에 반응하는 느낌이나 가 감속시의 변속기와 엔진의 필링은 '바닐라'라는 향신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제는 그 비중이 현저히 줄었지만 유지방 아이스크림의 풍미를 그 어떤 향신료보다 뛰어나고 부드럽게 부각시켜주는 바닐라 향이 렉서스를 감고 돌던 느낌입니다.

또한 마치 유연하고 경험많은 통역사의 그것처럼 노면의 거친 언어를 운전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적절한 스스로의 언어로 의역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스포츠세단'이란 분류는 그저 렉서스 주 고객층을 향한 마케팅적인 성격이 더 강하지 않은가 추측해 봅니다.

동승자의 안락함도 수행해내야 할 세단이라는 태생안에서 위화감을 줄 수 있는 하제의 직결감은 양보를 한다 하더라도, 필요시 빠른 조작에 바로 바로 답해주는 변속기의 직결감 만은 '스포츠'라는 명제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아집은 호평 일색인 렉서스의 6단 자동 변속기에게도 틈을 내주기가 싫었던것 같습니다.

일상 주행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3단 가속은 '부족하다'는 평이 더 많던것에 비하면 의외로 훌륭했습니다. 뿌듯한 토크가 140까지 이어지고 회전수는 남았으나 도로 사정상 감속 하였습니다. 급 감속없이 진행한 체험상 브레이크에 관한 언급은 무의미 할것 같습니다. 다만 일상적인 아니 더 조심스러웠던 감속에도 당일 체험한 다른 두대에 비해 확연했던 노즈 다이브는 기억에 남습니다.

시승전에 열어본 후드안의 풀 커버가 '렉서스를 타면서 엔진룸 안 쪽을 고민할 구매자는 너 밖에 없을거다'란 친구의 말처럼 렉서스를 대변한다면 너무 개인적인 억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아우디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필드에서 확실한 커리어를 확보한 이에게서만이 느낄 수 있는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딜러분께서 친절히 맞아 주셨습니다. 'A4 전륜 TFSI 좀 보러 왔습니다' 에 바로 이어지는 '콰트로 모델 밖에 준비가 안되었네요. 콰트로를 한번 느껴 보십시오'

막연히 콰트로를 느끼기에는 짧은 체험시간과 코스라고 판단하였고 또한 GTI와의 차이가 궁금해 FF로 계획을 했었는데 얼떨결에 난생처음 콰트로의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이건 콰트로인데... 동네 한바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로 생각이 이어지면서 구룡터널을 향해 차를 돌렸습니다. 분당 내곡간은 지금은 거의 다닐일이 없지만 구룡터널이 완공되기전 자주 다니던 길이었고 중고속을 체험할 만한 가장 가까운 코스였기에 뒤에 시승차례를 기다리는 분이 계셨음에도 살짝 무리를 하였습니다.

이전 두 차량에 비해 3-4배의 적산거리를 기록중인 시승차의 아이들 진동은 렉서스와는 비교자체가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만, 아마도 시승차만의 문제이지 싶습니다.

역시 S모드 시승이었는데 GTI의 DSG 보다는 각단 강제 변속 시점이 확연히 낮음을 알 수 있더군요. 그 시점을 대강 파악하고 오른쪽 쉬프트 패들을 건드리면 2 단수가 쉬프트 업되는 경우를 수차례 겪었는데 의도적인 설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운전자의 쉬프트 조작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라는 의도라 하더라도 위화감은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탑승자 4명 대 3명에도 GTI의 가속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3단 가속에서도 IS250의 손이 들릴만큼 강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고속화 도로에서의 최고속은 220을 마크할 정도로 꾸준한 토크의 유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부러 필요없는 과격한 2차선 연속 변경을 시도하자 왜 왜 '콰트로'인지 감이 오더군요 특히 차선변경 후 재가속시 너무도 매끄럽게 이어지는 전방을 향한 운동에너지는 그저 감탄사만을 유발 하였습니다. 또한 중고속 선회시의 트랙션 유지는 어째서 콰트로 운전자들이 그렇게 고속 코너에 자신이 있었고 또한 즐기게 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것 같습니다. 경험이 일천한 제 수준의 운전자는 차종이 바뀌고 구동방식이 바뀌게 되면 일정시간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것을 같은 FF 차량으로도 위험했던 순간들을 통해 익혀왔는데 콰트로는 그런 경험을 비웃기라도 하듯 '네 까짓게 부릴 수 있는 재주는 내가 다 받아주마 그냥 놀아라'라고 말하고 있는듯 했습니다.

IS250의 하체가 의역을 해준다면 A4 의 하체는 나름의 언어로 직역을 해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노면의 의도를, 노면의 언어를 공부하지 않은, 아니 공부할 필요가 없는 운전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정확히 번역해 준다고나 할까요?  


체험을 마치고 제 나름의 승자를 고르는데 별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래 차를 만들어 왔고 누구보다 노력해온 독일차가 그 외 차량 생산국들보다 차량 제작기술, 철학 전반에 걸쳐 독보적인 포텐셜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 논외일 것입니다.

반면 같은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소모품으로서의 품질 면에서도 모든 소비자가 인정할만큼 모든 면에서 우월한가에 있어선 사실 얼마간 회의적 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가격 이라면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독일 외의 메이커에서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란 막연한 의식이 지배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그 막연함을 떨칠 때가 됐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이었다고 해야할것 같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가까운 주변에서 친숙하게 경험해온 E46 M3, E39 530i 등의 차종에서 느껴졌던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이제는 4-5천이 우스운 국내 중대형 차종들의 가격표와 겹쳐지면서 녹아내리는 기분입니다.

이날의 짧은 경험만을 바탕으로 제가 다음차를 선택 하여야 한다면 주저없이 A4 콰트로를 선택할것 같습니다.

외기온 32도를 넘나드는 오후에 3명을 태우고 나름 괴롭혔던 A4의 수온계는 88도에서 꼼짝을 하지 않더군요. 제 개인 채점표상 운동성능은 당연히 GTI, 편의성을 포함한 모든것을 아우르는 종합 성적에서도 GTI였으나 이제는 동승자들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를 하는 5도어 세단 고르기에선 그 GTI도 갈등을 유발 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5천만원에 편안하게,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소유할 수 있는 52:48 의 당겨주고 밀어주는 쾌감은, 절대적인 파워에의 갈증이나 운전자를 한없이 편하게 해주는 옵션의 향연도 밀어낼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가격표 만으로도 이제는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나 느꼈던 국내에서의 현대의 위치가 더 좁게 느껴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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