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글이어서 경어를 생략함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대 스텔라 1.8i 4AT...

아버지 소유였고, '우리 집 첫 차'로 고작 8살이던 어린 나에게 비닐 덮인 묘한 냄새가 나는 실내의 신차를 처음 타보는 경험을 선사해준 차였다. 그 날로부터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늘 함께 해오다가, 뒷자리와 조수석에서 운전석까지 오게 되어 여러 모로 의미가 크다.

80년대 초중반에 출시되었던 차종이지만, 동시기에 출시되었던 다른 국산차에 비하면 요즘 차들과도 똑같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인테리어가 상당히 현대화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구태가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디자인이지만, 한 덩어리로 입체적으로 성형되어 도어 철판을 온전히 덮고 있는 도어트림과 헤드라이닝의 모습은 확실히 요즘 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앞뒤 유리도 요즘 차들처럼 실리콘으로 붙여놓고 그 위를 스테인리스 몰딩으로 덮어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고무몰딩으로 끼워넣은 방식이라면 연식이 오래될 경우 누수나 몰딩 쪽의 부식 같은 것이 발견되곤 했지만, 스텔라에서 그런 건 발견할 수 없었다. 두툼한 웨이스트라인 몰딩 덕분에 몰딩 이외의 철판 부분에서는 문콕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현역일 때는 꽤 괜찮은 국산차였고, 그 이후로도 차 없는 초보이던 내게는 그저 감지덕지였던지라 고마운 마음으로 타고 다녔다. 그 때만 해도 이미 자취를 거의 감춘 차종이었고, 중형차 주력이 이미 뉴EF 소나타~NF 소나타, 옵티마~로체, 매그너스라는 아득히 진보한 차종으로 넘어가 있었던지라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다. 그 당시가 스텔라가 출시된지 20년, 단종된지 13년 정도 되던 시점이었다. 요즘이라면 딱 NF소나타가 그 위치이지만, 그 때의 스텔라처럼 주목받는 경우는 없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스텔라 시절의 국산차 평균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고 차량 교체주기도 짧아 세대교체가 빨랐으며 세대간 진보의 폭이 워낙 컸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스텔라의 핸들을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12년 10만km를 넘긴 상태로, 신차 때보다 컨디션이 많이 저하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전륜 로워암의 볼조인트 고착에 따른 찌걱거리는 소음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신차 출고 1~2년차에 트럭이 후방추돌하여 하필 '야메'로 수리했던 트렁크의 부식과 누수에 따른 곰팡이 발생 문제도 있었다. 범퍼 네 귀퉁이와 스텐 몰딩 일부가 찌그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되는 부분을 제외한 전반적인 도장 상태는 상당히 양호했고, 하부 부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놀랍게도 엔진과 변속기의 컨디션도 상당히 좋았다.

카뷰레터식 새턴 엔진이 탑재되었던 1.4, 1.5, 1.6 모델과는 달리 1.8에는 MPI 방식의 시리우스 SOHC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기에, 엔진음이 Y2~Y3 소나타에서 흔히 듣던 왜앵~ 하는 하이톤의 바로 그 소리였다. 지금도 애마 HG 2.4를 탈 때면 그 소리의 흔적을 굳이 일부러 들으려 할 정도로 내게는 꼭 다시 듣고 싶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있는 소리이다. 시리우스가 아닌 세타엔진이 달린 중고차를 살 땐 일부러 BSM이 달린 걸로 골랐을 정도로. 그래서 세타 2.0은 세타1로, 세타2는 2.4를 굳이 고집했던 것 같다.

실내로 들어가 앉아보면 그다지 인체공학적이지 않음이 와닿았다. 시트의 착좌감은 그냥저냥, 손발이 스티어링휠과 페달에 닿는 거리와 각도는 시트를 어찌 조정해도 편하지는 않았다. 시트는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게 원터치 레버식이 아닌 다이얼식이라, 각도를 크게 조정하려면 몇 바퀴를 연거푸 돌려야 했고 그나마도 등받이의 무게 때문에 다이얼이 잘 돌지 않으면 등받이를 붙잡은 채로 돌려야 했다. 그래도 요추받침 조절레버가 있어서, 당시 가끔 찌릿찌릿하는 요통에 시달리던 내겐 정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티어링휠은 텔레스코픽은 커녕 틸트 기능도 없는 고정식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스티어링 계통의 유격감이나 소음이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타는 HG 2.4는 텔레스코픽 스플라인 쪽의 유격으로 떨걱떨걱하는 소음이 난다.

dash.jpg

▲2006년 3월, 마지막으로 앉아보았던 날
 

시트 조정이 끝나고 정면을 바라보면 대쉬보드 높이가 아득히 낮은 느낌이었다. 후드 끝이 훤히 보일 정도. 밖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경치인데, 신형 차들을 타다가 처음 앉으면 혹시 사고라도 나면 대쉬보드 위로 유리창을 뚫고 튕겨나갈 것만 같은 상상이 들었다. 대쉬보드 높이가 낮기에 하단 시야는 매우 좋았으나, 단점이라면 전방에서 다가오는 도로가 그만큼 빠르게 다가오는 것으로 느껴져 시각적으로 속도감이 컸다. 이게 NVH와 주행안정성의 취약함과 함께 단거리 운행에서조차 피로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곤 했다.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80km/h만 되어도 스릴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차를 운전하며 가족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던 우리네 부모님들이 새삼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중형차로 포지셔닝 되었던 차로서는 차체가 좀 작았던 만큼 공차중량은 1톤을 조금 상회할 정도로 한없이 가벼웠다. 그 가벼운 바디에 1.8리터 105마력 사양으로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엔진을 품었기에 출력 부족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집 스텔라는 보그워너 라이센스의 기계식 4단 자동변속기였다. TCU와 댐퍼클러치가 있을리도 없는 이 변속기로 말미암아 체감 동력손실은 어마어마했고 실제로 엔진은 열심히 도는데 가속은 참으로 더뎠다. 추월가속을 위해 가속페달을 쭉 밟으면 엔진은 용을 쓰는데 차는 좀처럼 나아가지를 않았다. 뒤에서 쭉쭉 다가오는 차들의 경적세례는 덤.

이쯤 되면 연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시절에는 생각보다 기름 얼마 안 먹네? 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 곰곰히 되짚어보면 가벼운 중량에 비하면 연비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시내 기준 잘해야 8km/l로 보는게 맞겠다. 지금 타고 있는 HG 2.4보다 더 좋지는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을 하면,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약 13초 정도 걸렸었던 것 같다. 놀라운 점은, 엔진 마운팅 구조가 유체봉입 댐핑 타입도 아니고 하다못해 부싱 타입도 아닌 고무패드 달랑 한 장이 전부인, 차체와 거의 직결인 구조였음에도 엔진 회전 질감과 가속감은 풀가속 상태에서도 그다지 거칠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직결에 가까운 구조임에도 그저 아둔한 변속기 때문에 가속 반응이 한참 더뎠던 것만이 진심으로 대단히 안타까웠다. 그래서, 돈 벌어서 수동변속기로 스왑하자는 꿈을 갖곤 했었다. 소형 농기계마냥 형편없이 초라한 소리를 내던 테일 머플러도 최소한 그 시절 신차들의 순정 상태 정도까지는 되도록 손 보고 싶었고.

한편, 엔진 냉각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가도, 한여름 장시간 운행을 하다보면 수온계가 쉽사리 70~80%까지 치솟곤 했다. 그럴 때마다 차를 세우고 후드를 열어 엔진룸의 열기를 적극적으로 빼내어 수온이 떨어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다시 운행하곤 했었다. 써모스탯 문제를 의심하기엔 신차 때부터도 그 증상이 더 나빠지지 않고 늘 일관되었고, 정비소에서도 배기량 불문 열을 잘 받는 차종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 국내 자동차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것이 하나 있으니,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인 '이니셜 D'였다. 난생 처음보는 포장도로 드리프트 장면에 환호하는 매니아들이 있었지만, 그런 주행을 할만한 FR 자동차를 구하기 어려웠고 장소도 마땅치 않아 일부 매니아들은 플레이스테이션2라는 콘솔 게임기로 그란투리스모3~4라는 당시 걸출했던 드라이빙 게임으로 그 갈증을 해소했었다. 유튜브도 없던 그 시절, 그 리플레이 영상이 국내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면 그걸 넋놓고 보곤 했다.

내 경우, FR 승용차인 스텔라가 집에 있으니 빈 공터나 와인딩로드를 찾아가서 이런저런 연습을 해보았는데, 그 때 느낀 점은 '이 차로 이딴 짓 하면 안 되겠다'였다. 요즘은 오토 경차조차도 순정 상태로 바로 서킷으로 가져가 적당한 페이스만 유지하면 충분히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하지만, 그 시절에는 당시의 신차조차도 하체를 어느 정도 보강하고 레드존까지 힘있게 돌리기 위한 적당한 흡배기 튜닝에 가급적이면 수동변속기 정도는 갖추어야 했다. 그런데 스텔라는 그보다도 한참 오래된, 70년대 포드 코티나 플랫폼에 물침대 셋팅이어서 기초적인 핸들링조차 논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코너를 앞에 두고 브레이킹으로 전륜에 하중을 주려고 ABS도 없는 차의 브레이크 페달을 지긋이 밟으니, 185/70R13 사이즈의 한국 마일리지 플러스 타이어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끼이익 하는 하이톤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발의 힘을 살짝 빼야 했다. 하중을 충분히 싣지 못하니 그대로 더 감속해서 코너를 천천히 돌 수 밖에 없었고, 선회하는 내내 앞타이어만이 아슬아슬하게 차의 관성을 버텨내며 앞머리를 돌려나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뒷타이어는 브레이크를 더 밟건 가속페달을 푹 찌르건 얌전히 따라 구르기만 했다. 조종성이 떨어지니 사이드브레이크를 쓰는 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FF 차량으로 스티어링+브레이킹 조작하여 테일슬라이드를 일으키는게 훨씬 쉽겠다 싶을 정도였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시도했을 때의 이러한 점은 일상 주행에서도 어느 정도 느껴지는데, 쉽게 체감이 될 정도로 차대 강성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스프링, 댐퍼가 물침대 셋팅인 것은 승차감의 이유를 포함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다. 따라서 로드홀딩이라는 부분은 그다지 기대하기 힘들었다. 노면이 울퉁불퉁한 길을 주행할 때, 특히 비 오는 날이면 60km/h 정도의 속력에서도 자칫하면 이대로 미끄러지겠다 싶을 정도로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더 감속하여 주행해야 했다. 요즘 차들이 아주 싸구려 타이어를 끼워도 적당히 노면을 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도로 위를 붕 떠서 가는 느낌이었다.

고속도로에 오르면 100km/h를 넘기는게 의외로 힘겨웠다. x20km/h가 사실상 한계라고 느껴졌고, 힘겹게 x40km/h에 다다르면 뭔가 정말 대단하고 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 세계가 열렸다. 빨리 감속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에 결국 규정속도 이내의 안전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교통법규 친화적인 면모를 강하게 내보였었다. 앞서 언급하였듯, 80km/h만 되어도 스릴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100km/h에서는 직선구간에서도 붕 뜬 듯한 주행감으로 불안정했고, 더불어 유압식 스티어링휠은 늘상 차를 리프트로 띄워놓은 것마냥 가볍기만 했다. 이 차로는 운전 재미를 위한 그 어떤 것도 시도하면 안 되는, 말 그대로 천상 일반 승용차일 뿐이었다.
엔진음과 풍절음, 바닥 소음의 실내 유입이 정말 심해서, 고속도로에서는 말 소리가 다 묻히는 통에 가족끼리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이렇듯 주행성능은 가감속과 선회 및 고속안정성, 심지어 NVH 면에서도 낙제점을 면할 수 없었지만, 안전운행이라는 범주 내에서 주행할 때는 의외로 참 쾌적했다.
작은 차체에 각진 웨지 라인의 전형적인 3박스 노치백 세단으로 공간활용도가 좋을 수가 없는 구성이었지만, 성인 4명이 타고 돌아다니며 좁아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던 기억이다. 창문 턱 높이가 낮아서 시야도 참 좋았고, 특히나 그 시절에는 '썬팅(틴팅)하면 양아치 같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자동차 관련해서는 보수적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맨유리를 유지하고 있던 창 너머로 보이는 경치들은 늘상 천연색으로 아름답게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곤 했다. 
다만, 공조기 라인의 공기 누설이 심한 탓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고생했던 기억이 웃프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도 차 안에서 부채질을 해야 했고, 겨울에는 히터를 켜고도 두꺼운 외투를 꼭꼭 껴입어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 오는 날이나 겨울철에는 풀파워로 디포그를 켜도 앞유리의 김서림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늘상 도어포켓에 수건을 넣어두고 있다가 김이 서리면 그걸로 닦아가며 타야 했다.

함께한 시간은 대략 16년 정도로 짧지 않았지만, 내가 직접 이끌고 다닌 시간은 약 1년 반 정도로 그리 길지 못했다. 군 입대를 하며 부모님께 내가 전역할 때까지 스텔라를 정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지만, 내가 전역하던 날에는 고카트 드라이빙 실력으로 운전면허를 쉽사리 갓 취득한 동생이 외삼촌의 대우 프린스를 몰고 데리러 왔었다. 스텔라는 이미 내가 상병 휴가를 다녀간 이후 견인차에 이끌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필 안전상 가장 중요한 제동장치, 후륜 드럼 브레이크의 실린더가 고장났었는데 그걸 고칠 부품을 도저히 구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다고 한다. 그 때 부품을 내어주지 못한 현대를 어찌나 원망했던지...

지금 같았다면 찍히고 녹슨 차체를 재정비하고, 브레이크는 호환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서 그대로 타거나 하다못해 대쉬보드를 뜯어내어 공조기 덕트 틈새를 야무지게 밀봉하고, 나아가 엔진을 4G63 DOHC로, 변속기는 5단 수동으로 스왑하고 방음방진 시공하고 차체 보강 및 하체 튜닝으로 환골탈태시켜 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걸 전혀 몰랐었다. 자동차를 좋아했지만, 아는게 너무 없었던 것이었다.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12년에 내 명의의 중고차를 구매하려 했을 때 중고차 매장에 가서 스텔라를 찾았지만, 딜러의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에 내가 옛 추억에 잠기어 시대 착오를 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야 했다.
지금도 가끔, 우리 가족의 첫 차이던 스텔라를 지금까지 갖고 있다가 수리해서 타고 다니는 꿈을 생생하게 꿀 정도로 나에게는 가슴 깊이 묻어둔 가장 소중한 자동차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름처럼 밤하늘의 별이 되어 어딘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리라...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으리라는 망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차 HG 2.4는 그 스텔라와 비슷한 쥐색에 BSM의 왱왱거리는 소리를 품고 있다.

사랑했던 스텔라 1.8i,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너의 모든 부분들이 고철이 되고 재활용품이 되어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지만, 그래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먼 훗날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구나. 지금까지처럼 가끔 꿈 속에라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front.jpg

▲2003년 9월, 한창 재미나게 타고 다니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