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젠뒤엔 ‘장미꽃 피었다’ 공포의 노래
[특파원리포트] 도요타의 또 다른 얼굴

② 죽음까지 부르는 효율지상주의의 그늘

  박중언 기자  

  

▲ 도요타 노동자들이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도요타 제공


2004년 5월12일 연료겸용차(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 등을 생산하는 도요타자동차 쓰쓰미공장. 33살 기계수리 담당 직원이 범퍼를 만드는 사출성형기(프레스기) 안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기계가 움직이는 바람에 압사했다. 사출성형기는 원하는 모양의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금속틀이다.

이날 아침 당번이던 이 직원은 금속틀에 이상이 있으니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현장 담당 직원도 이 기계에서 만들어진 범퍼에 자국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장 담당이 먼저 도착해 작업지침에 따라, 기계작동을 중단시키는 안전플러그를 뽑고, 스위치를 넣지 말라고 적힌 자신의 명찰을 걸어놓은 뒤 점검에 들어가 금방 그 원인을 알아냈다. 작업 로봇의 팔에서 펠트 천이 벗겨지면서 금속부분이 노출돼 자국을 낸 것이다. 이 직원이 새 천을 가지러 자재창고로 간 사이, 수리 담당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명찰을 걸어두고 성형기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온 현장 담당은 그 명찰을 보지 못한 채 천을 갈고는 기동 스위치를 넣었다. 수리 담당의 비명이 울리자 곧바로 비상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전동식인 ‘세계 제일의 혁신 성형기’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다. 이전의 유압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동력을 갖고 있었다.

직원의 부주의에 의한 비참한 사고다. 사고 뒤 도요타는 안전교육을 더 철저히 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이면에는 효율제일주의의 부작용이 자리잡고 있다. 현장에선 사람이 들어가면 기계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안전매트(철판)를 설치하지 않고 사람이 확인하도록 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안전매트가 있으면, 제품의 일부가 안에 떨어져 있어도 기계가 멈추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물질 제거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 이것들은 작업속도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때문에 사람의 확인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꾀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안전대책은 사람이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도요타는 작업자에 책임을 전가하고 더욱 완전무결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숨진 수리 담당의 부친이 성형기 재가동의 조건으로 안전장치 도입을 요구하자, 도요타는 광전관(물체를 감지하는 광센서)을 달았다. 그렇지만 사고를 낸 그 성형기 외의 나머지 기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최소한의 안전대책만 내놓고는 노동강화로 대처한 것이다.

조립라인을 옥죄는 공포의 노래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 지난 1월22일 나고야 노동회관에서 열린 새 노조 창립대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직원의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빨리 조립라인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초조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쓰쓰미공장에는 라인이 멈추면 공장 안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장미꽃이 피었다”는 곡이 소란스레 흘러나온다. 어디서 이상이 생겼는지 금방 주위에서 알게 된다. 문제의 소재를 시각화한 도요타 생산방식의 하나다. “음악이 울리면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죄악감이 엄습해온다. 1초라도 빨리 라인을 재개해야겠다고 서두르게 된다.” 현장 직원의 말이다.

하루 작업이 끝나면 그 날의 생산대수가 발표되는 동시에, 중단된 공정과 지체 시간도 보고된다. 생산대수 감소의 책임이 어느 공정에 있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요타식은 끝없는 ‘가이젠’(개선)을 통해 합리화와 효율성을 극한까지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도요타 조립라인의 노동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초과밀노동과 장시간노동은 때로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과로사와 자살, 범죄를 불러오기도 한다.

2002년 2월9일 같은 쓰쓰미공장 차체부 30살 직원이 잔업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숨졌다. 그가 입버릇처럼 한 말은 “자동차 전조등을 켜고 집에 가고 싶다”였다. 도요타 공장의 근무체계는 2교대로, 주근이 6시25분~15시15분, 야근이 16시10분~1시로 돼 있다. 야근이 끝나도 새벽 2시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잔업이 일상화돼 있다. 잔업으로 날이 밝아야 귀가하다보니 어두울 때 집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한 것이다.

동료 직원들은 그를 추모하며 노래를 지었다. “야근 정시는 밤 1시/ 귀가는 아침 6시반/ 라이트를 켜고 돌아가고 싶었어.” 이 직원이 공장에서 쓰러진 시각은 새벽 4시20분께였다. 그의 부인이 조사해본 결과, 사망 전 한달 동안 그의 잔업 시간은, 후생성이 정한 과로사 라인인 100시간을 훨씬 넘는 144시간이었다.

지난해 1~11월 사이에 다카오카공장에서는 4명의 직원이 숨졌고, 쓰쓰미공장에선 7~8월 3명이 숨졌다. 명확한 사인이 명기되지 않아 업무 관련 사망이거나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자동차에 배기가스가 들어오게 한 상태로 숨져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직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신질환자나 자살자의 수는 공표되지 않는다. 지난해 7월2일에는 연쇄방화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 주로 자동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아 30건 이상 불을 질렀다. 그는 26살의 도요타 직원이었다.

도요타 노무관리·노사관계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사루타 마사키 주쿄대 경영학부 교수는 “도요타의 비인간적 노무관리는 노동자의 건강 뿐아니라 인간성의 파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도요타 관련기업 직원은 날마다 장시간, 초과밀, 불규칙 노동을 해도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는 일은 거의 없다. 승진·승급·전배·기업내교육 등의 당근과 채찍을 앞세운 인사관리로 인해 ‘동질성, 높은 비용의식, 상급자에 대한 복종과 하청업체에 대한 고압적 태도’라는 특징을 가진 도요타맨이 육성된다. 이런 지적을 하면 도요타에선 ‘선생 말대로 하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반론이 돌아온다.”


“숨쉴틈을 달라” 소박한 요구 내걸고 새 노조 결성


지난 1월22일 도요타자동차 그룹에는 회사 쪽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노조 ‘전도요타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이날 참가한 조합원은 6명, 지원자를 포함해 십여명이 전부였다. 새 노조 결성 움직임이 사전에 노출되면 원천봉쇄될 가능성이 높아 극비리에 준비를 진행했다. 결성대회에선 기존 노조가 노사협력에만 치중해 장시간 과밀노동과 무급 잔업을 방치하는 등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는 비판이 속출했다. 이들은 “일하는 사람의 생활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진정한 노동조합을 지향한다며 △잔업 없이는 가족 부양이 어려운 임금체계의 개선 △무급 잔업을 없애기 위한 출퇴근 시간 체크 △젊은 정규직 채용 확대의 ‘소박한’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도요타는 지난 50년 이상 정리해고없이 종신고용 체제를 유지해 인간중심 경영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우수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와 직원 의식 교육의 최선봉에 서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게 ‘인간적 경영’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작업효율 극대화를 위해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묶인 노동자가 조금도 일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때론 잠시나마 빈둥거릴 틈도 허용하는 게 사람 냄새가 나는 작업장이 아닐까?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