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맵튠社의 stag1 1 ECU로 교체하고 일정 기간 주행해 본 느낌을 짧게 적어보겠습니다.

제 차는 2002년식 사브 9-3 애니버서리 컨버터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브 터보 25주년 기념모델을 뜻하는 '애니버서리'라는 이름으로 한정 판매되었으나, 해외에서는 다른 사브의 차급분류와 마찬가지로 AERO로 판매된 차종으로, 205마력에 1bar를 쓰는 고압터보 엔진을 얹고, 에어로 파츠를 전/후/측면에 장비하고 있습니다. 서스펜션 및 기타 장치, 편의장치 등은 모두 동시기의 에어로 사양 그대로입니다.

일단, 이 차를 1년 반 가까이 탄 느낌을 요약하자면 '굉장히 신경질적인' 느낌의 주행질감을 가진 차라는 것입니다. 현행의 9-3SS보다 더 부스트를 쓰는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혹시 현재보다 덜 발전된 기술수준 탓에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더 거칠게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후자의 이유는 전적으로 제 추측입니다.

어쨌든 '신경질적'이라 묘사해도 무방할 만큼 이 차는 거칠게 튀어나고 예민하게 액셀에 반응합니다. 조금만 오른발끝에 힘을 주면 웅-하는 엔진음과 함께 RPM과 터보게이지가 동시에 급상승합니다. 꽤 큰 터빈을 사용했는지(미쯔비시제로 알고 있습니다) 터보랙도 극적이라 할 만큼 크고 인상적입니다. 다른 사브차들과 마찬가지로 중고속대에서의 추월가속능력은 강호일절이라 할 만 합니다. 일반 모드에서도 그렇지만 스포츠 모드로 진입한 후의 주행은 한마디로 '미친듯'합니다. 스타트시 휠스핀은 기본이고 초중반에서는 사브의 느린 제로백을 무색케하는(적어도 체감상으로는) 흉포하고 폭발적인 주행특성을 보입니다. 이래저래 그야말로 '터보차다운' 차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N/A차의 질감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질겁하실 수 있는 차입니다.

이 차에 맵튠을 올리기로 했을 때, 제 예상은 이랬습니다. 맵튠을 올리고 나면 기본모드가 그전의 스포츠 모드 정도 되고, 스포츠 모드는 그보다 훨씬 더 흉폭(?)해 질 거라고. 그렇게 예상하는 게 상식적이었지요.

그런데 정작 맵튠 ECU를 달고 오늘까지 주행해보니 제 예상은 전혀 틀렸던 것 같습니다.

일단 차가 꽤 묵직해졌습니다. 스타트에서 80km/h 정도에 이를 때까지의 반응은 이전의 날카로움이나 예민함 대신 묵직하고 일관된 가속감이 두드러집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토크가 높아져 차의 동력전달 반응이 훨씬 두툼해진 느낌이랄까요. 물론 이 속도대에서도 액셀을 더 깊게 밟으면 부스트가 확 터지긴 하지만 그래도 맵튠 이전의 극단적인 터보랙이 주던 대비와는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이 정도 속도대에서 두드러지던 스포츠 모드의 '차 무게가 확 가벼워지는' 느낌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대신 마치 배기량 자체가 커진 것처럼 스타트부터 중고속에 이를 때까지 꾸준한 상승감이 느껴지고, 어느 시점에 엔진의 힘 한계에 이르러 순식간에 힘이 빠지는 느낌, 즉 한계점이 한참 뒤로 밀려났습니다. 예전같으면 초반에 미친듯 밟아 튀어나간 후 상대차가 계속 가속하는 중 먼저 힘이 빠져 허탈해졌을 시점에서 맵튠 ECU는 아직도 한참 넉넉한 여유분을 남겨둔 느낌을 운전자에게 전달합니다. 가속페달에 여유가 있고 차량의 전반적인 퍼포먼스도 아직 마진이 많이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그저께 토요일에는 사브오너스클럽의 드라이브 번개에 참석했습니다. 몇시간을 내리 달린 꽤 긴 코스였는데, 맵튠 ECU에 적응하고 나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를 운전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9-3SS 에어로의 오너분들보다는 BMW 330 오너가 평상시 느끼는 주행질감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제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혹은 지극히 주관적인 묘사라 객관적 팩트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제 얄팍한 글재주가 미치는 범위에서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그저께의 드라이브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고백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드라이브 내내 한 번도 출력의 부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항상 가진 힘의 절반쯤만 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민함 대신 더 파워풀해졌다고 할까요. 두번째 얘기할 것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어느 터널안에서의 일입니다. 다른 회원님이 선두에 서시고 제가 두번째 차량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정이 넘었을 때이고 저는 탑을 오픈한 상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탑을 열면 공기저항이 심해져 같은 출력에서도 속도저하가 큽니다. 시간도 늦었고 길이 텅 비어있었던 탓인지 앞서가던 선행차가 가파르게 가속하였습니다. 저는 위에 적은 대로 출력의 반 정도만 쓰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조금만 더 발끝에 힘을 보태 선행차의 뒤를 따랐습니다. 거의 속도감이 없었고(저는 200km/h 넘으면 겁나기 시작할 만큼 소심합니다) 터널벽에서 반사하는 배기음도 별로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정황상, 그리고 체감상 170~180km/h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무심코 계기판을 보니 220km를 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속도감을 느끼지도 못했고, 액셀에도 아직 여유가 많고, 차의 소리도 한계점까지 아직 한참 남은 듯 한데 물리적인 속도는 그러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터널안이었기 때문에 공기저항이 적어 가속에 유리했겠지만 탑을 열고 있었으니 그 핸디캡을 감안하면 이익과 손실이 서로 상쇄된다고 해야할텐데, 아무래도 이 속도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상태에서 좀 더 가속한다면 240~250km/h까지는 금방 쉽게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그럴 수 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운전자에게 주는 느낌이 그랬다는 얘기입니다)

이상 맵튠 ECU의 느낌을 적어보았습니다. 제원상 제 차는 260마력에 350Nm의 토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그 숫자 자체보다는 차량의 전체적인 특성 변화가 더 몸으로 느껴집니다. 2리터대의 가볍고 경쾌했던 극단적인 터보차가 마치 3리터급의 꾸준하고 파워풀한 가속감을 자랑하는 N/A차처럼 변했다는 게 제 간단리뷰의 요약입니다. 혹시, 짧은 구간에서의 급가속을 즐기는 제 운전특성이 아직 ECU에 충분히 학습되지 못해 전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섣부른 단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발끝에 전해오는, 그리고 온몸으로 예감하는 느낌만으론 예전 자유로에서 제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그 하얀 RX-7을 이제는 쫒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지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계의 끝까지라도 집요하게 바짝 따라붙을 수는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이 하얀색 맵튠 스티커가 붙어있는 새 ECU가 제게 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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