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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일요일 오후, 정체가 극심한 강남대로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동승석엔 와이프가 조잘거리며 앉아 있고, 뒷좌석엔 아가들 둘이 사부작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힘겹게 직진 신호 하나씩을 받아가며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좌회전 차로에서 얌체차량 하나가 시그널도 없이 머리를 집어 넣습니다.

괘씸한 마음에 가볍게 클랙슨을 울립니다.

 

끼어든 차량의 브레이크 등이 꺼지며 차 문이 열립니다.

운전자가 죽일 듯한 기세로 다가와 창문을 두들깁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하시겠습니까?

 

 

 

작년 여름, 잠실 야구장에서 겪은 제 앞 차와 관련한 일화를 재구성 해봅니다.

 

두산vs기아 경기 8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두산을 응원하러 갔던 저희 일행은 일방적인 기아의 우세로 8회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 나가기로 합니다. (결국 그 날 경기는 스코어 그대로 두산 패배로 끝이 났음)

만석이었던 관중들이 한꺼번에 몰릴 것을 미리 대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예상과는 다르게 관중의 반은 이미 주차장을 향하고 있네요.

진출입구와 가장 멀리 주차했던 터라 서둘러 줄을 섰습니다.

주차한 곳과 출구 대로변의 중간 정도 다다르는데 30분이 소요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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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구간이 생기며 정체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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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황선으로 표시된 대형세단 한 대가 무리를 이탈하여 엉뚱한 짓을 합니다.

제 앞 미니밴이 희생양 입니다.

절대 자리 내주지마라.. 내가 해결하마.. 마음속으로 주문을 겁니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마음 먹고 들어온 상황이라 결국 자리를 빼앗깁니다.

제 앞 차는 딱 한 방 클랙슨을 울렸습니다.

 

끼어든 검정세단에서 고기 한 덩어리가 내립니다.

옥시크린으로 표백한 듯한 새하얀 셔츠에 단꼬바지 정장바지 차림의, 딱 봐도 건들건들 하시는 분이네요.

이미테이션으로 보이는 금장시계를 거칠게 풀며 제 앞 차 운전석 창문을 두들깁니다.

그 다음 상황은 점잖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미니밴 운전자 참 양반 입니다. 차분히 시시비비를 따지시네요.

조수석에 타 있던 부인이 죄송하다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정을 하고, 놀란 아가들은 울어댔습니다.

보다 못한 저는 안전벨트를 풀렀습니다.

당장 내려서 '어이, 내가 한 입 줄까! 그쯤 하고 이리 와봐, 어이!'....................

요런 멘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정말 환장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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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채 벌겋게 익은 고기는 한참을 퍼붓더니 차로 돌아갑니다.

결국 미니밴은 대형세단 뒤에 멀찌감치 따라 섰습니다.

이 상황에 분위기 파악 못한 노란 점들이 뒤에서 새로운 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놔 이것들.. 잔치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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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거꾸로 솟고 이성도 잃었으며 머리속도 진작에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잠도 안 올 것 같아 가로(제 차 초록선)로 세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시동도 꺼버리고 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마디 했습니다.

"아까 있던 자리 찾아가서 정렬 안 할꺼면 다들 차에서 취침 준비하쇼!" (정확한 멘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ㅎㅎ)

 

뒷골이 싸늘해 집니다..

아까 그 고기가 다시 내려서 저를 부를 것만 같습니다.

딱 그 타이밍에 제 일행들이 일제히 담배 하나씩을 물고 내립니다. 후~ 다행이다..

그러더니 저를 차에 태우며 그냥 가자.. 차라리 저 고기 잡자. 이러는 겁니다.

저는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좀 전의 그 용기는 이미 절 떠난지 오랩니다.

"그냥 갈꺼면 진짜 그냥 가자.."

 

 

18195번 허경환님의 블박 게시글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런 상황 충분히 누구나에게 올 수 있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천태만상 못 볼 꼴 다 겪습니다.

아직 저는 총각이지만 와이프와 아가들과 함께 다닐 날이 제게도 올 겁니다.

엔진-스타트 하고 얼른 달려 아무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엔진-스탑 하게 해주소서,

냉수 한 사발 떠놓고 비나이다 바랄 수만도 없는 노릇이고..

 

무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한 가장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할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딱히 해결책을 못 찾았습니다.

소형차 타고 다니면 무시 당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편 하나 믿고 사는 아내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라 의심치 않던 자식들도

막상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는 그 모습을 목격한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그것이, 잘 참았다는 한 마디의 위로로 위안이 될 문제일까요..

그런 모욕을 당한 본인은 심한 자괴감으로 얼마나 괴로울까요..

 

법적, 금전적 부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자들은 어떻게 다뤄줘야 하는 것인지,

졸지에 험한 꼴 안 당하고 맞서려면 똑같이 그런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일런지요..

 

 

_Soul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