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하노버에서 있었던 Kafer Treffen이라는 이름의 행사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 행사는 폭스바겐 공냉식 차들의 잔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노버로 향하는 아우토반에서 페라리 456 GT와 250km/h을 넘나드는 속도로 함께 했었는데, 오너가 백발의 할아버지였고, 역시 백발의 아내와 함께 고속드라이빙을 즐기는 중이셨습니다. 아마 456 GT는 순간 속도 290km/h가까이 달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빨리 달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속도제한 구역에서 속도가 줄었을 때 옆으로 오시더니 엄지를 올려주셔서 특히 기억에 남는 하루였습니다.


550 스파이더는 레플리카를 서킷에서 타본 경험이 있고,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모델이며, 보트형으로 만들어진 차체는 생각보다 상당히 단단한 느낌이었습니다.














워낙 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인도 나무그늘에 세워두었는데, 경찰들이 아예 인도로 차를 올리라고 안내를 하더군요.


2차대전 때 사용되었던 군용차들도 대부분 폭스바겐에서 제작된 것들입니다.


유럽 전체를 커버하는 행사인만큼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카만 기어 역시 스페셜 모델중에 하나이며, 상태 좋은 녀석들의 가격은 엄청납니다. 한국에 두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자들의 차량 관리와 세차는 때와 장소를 안가리지요.


이 정도로 관리하느라고 여자친구와 헤어질 것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550 스파이더를 베이스로 만든 경주용 차량인 듯 보이는데, 자세한 설명은 권규혁께 돌립니다.














유럽 전역에서 몰려온 올드 비틀의 모습은 과히 장관이었습니다.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비틀은 독일 자동차 역사에 아주 중요한 모델입니다.

예전에 닥터 포르쉐의 일대기를 엔지니어로서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30년대 히틀러의 제안에 의해 비틀을 개발할 때 붙여졌던 국민차의 개념은 사실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 국민차의 국민은 서민이나 평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게르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리고 기술적으로 앞서있는 차가 바로 히틀러가 생각하는 국민차였던 것이지요.

2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독일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 마당에 게르만의 우수성 어쩌고하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독일인들 입장에서 정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입에 올리지 않을 뿐이지 당시를 살았던 많은 증인들 그중에서도 페르디난트 피에히 박사 바로 전 폭스바겐 그룹 CEO였던 칼 한 박사의 당시를 회상하는 회고는 너무도 명확하게 비틀의 개발 배경 및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비틀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45년도 당시의 자동차 산업을 되돌아보면 비틀은 이미 경쟁차량보다 기술적으로 성능적으로 월등히 앞선 차였고, 리터당 12.5km를 달릴 수 있고 최고속 120km/h로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당히 진보된 차량이었습니다.

포르쉐 박사가 비틀을 개발할 당시 포르쉐 박사가 생각하는 내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예정보다 개발이 늦어진 배경 역시 완성도가 높은 차를 개발하겠다는 강한 자존심 때문이었고, 히틀러는 비틀의 모양에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지만 주행성능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2차 대전의 전범인 히틀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포르쉐 박사는 물론 포르쉐 집안 전체가 폭스바겐의 경영은 물론 폭스바겐이 비틀의 100만대, 200만대 생산 돌파와 같은 커다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철저히 배제된 것은 포르쉐 집안으로서는 분명 앙금이었을 것입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어떻게 변했나요?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인 피에히 박사의 의도에 의해 포르쉐는 폭스바겐의 지분율을 올해 31%까지 높였고, 이제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폭스바겐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 피에히 박사는 할아버지의 한을 풀고 잃어버린 가문의 영광을 되찾아야한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폭스바겐은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포르쉐가 폭스바겐 지분율을 높인 것에 대한 국민적 환영을 받을 수 있었고, 폭스바겐의 R&D 및 프로덕트 기획에 대해 관여 내지는 공유할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부가티 베이롱을 만들 수 있었던 폭스바겐의 R&D는 역대 최강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왔던 엔지니어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고, 게다가 새로 부임한 빈터콘 폭스바겐 그룹 회장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폭스바겐 그룹은 다시한번 기술이미지를 높이는 도약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test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