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입니다.

많이 유명한가봅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고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저도 아는걸 보면 말이죠.

오늘 이 말이 생각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글을 씁니다.



#1

작년이었나요?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와인딩을 하는것이 옳으냐에 대한 긴 토론이 있었죠.

사실 토론은 사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더 열심히 참여했을뿐, 그 이후 달라진건 없는거 같아요.


#2

어제인가 오늘인가.. 범퍼 앞의 카나드를 달았다는 글이 올라왔었고,

제목부터 발목절단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위험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쓰셨죠.

카나드의 효용성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신 분도 있었고, 역시나 위험해 보인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작성하신 분이 글을 내리신건지 삭제되고 없네요.


#3

오늘 제 잠을 깨운 주범은 바로 저희 아파트 앞에서'만!' 계속 왔다갔다 거리는 두대의 차에서 나는 머플러 소리와

앳된 목소리의 카랑카랑 울리는 웃음소리였습니다.

같은 자동차 매니아로서 한참을 참고있다가 30분쯤 되니 잠도 완전히 깨서, 어떤 차들인지 궁금하더라구요.

내려다보니 흰색 엑센트에 검정색으로 루프필름을 씌운걸로 보이는 차와 구형 아반테로 보이는 차 두대가 저희 집 앞 도로에서 왔다갔다 거리고 있네요.

신호 위반은 물론이요 아무데서나 유턴하고, 1차선에 멈추고 길에 서있는 동료들에게 소리지르고...

밤이라고해도 차가 잘 안지나다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고를 하는게 나을거 같아서,

또 경찰이 진짜 오나, 얼마만에 올까 궁금하기도 해서 신고를 해봤습니다.

112는 뭔가 중요한 사고가 있을때나 전화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민원접수도 112에서 받더군요.

경찰아저씨께 신고하고 얼마나 걸리나보자.. 생각하고 내다봤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차들을 따라가네요.

사고의 위험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따라가는건 아니고, 그냥 멀리서 멈추라고 방송만 하면서 따라가고,

두대의 차는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다시 돌아와서 '야, 짭새가 계속 따라와 빨리 타!' 하면서 또 1차선에 멈춰서 동료들을 태우고 사라지네요.




저는 1번 사건과 2번 글에 대해서 아무런 리플도, 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속도를 즐기고, 와인딩을 다니는 자동차 매니아로서,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고를 하고나서도 기분이 영 좋지 않은것은, 저도 그렇게 찾아온 경찰을 마주해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과속을 하고,

불법주차를 하고 주차딱지가 없기를 바라며,

사람이 없는 신호등을 슬그머니 지나가기도 하고,

실선인 다리 위에서 차선을 바꾸기도 합니다.

가끔은 정류장마다 멈추는 버스를 추월하기 위해 황색 실선을 넘기도 하구요.


제가 가끔 어기는 신호위반이나 과속은 괜찮고, 중앙선 침범이나 범퍼에 위험한 부착물을 다는것에 대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너무나 일반적으로 어기는 법규는 괜찮고, 피해가 큰, 혹은 커질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는게 맞을까요?

그 범위는 어디까지로 한정지을수 있을까요?

중미산 와인딩은 괜찮고, 고속도로 칼질은 손가락질 당해야 하는 문제인가요?

개인마다 다른 그 기준을 어떻게 설득하고 토론할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법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당사자가 아닌 경우 침묵하는게 맞는걸까요?

법규를 어기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정도는 괜찮지, 아니면 어차피 그 책임은 내가 지는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개인에게 피해를 보게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겠지요. 그래서 법을 만들고 지키려고 하는 것일테구요.



비트겐슈타인이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은,

사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묵인하라는 의미는 아닐것입니다.

물론 결론이 나기 어려운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같이 싸우지 말고 방관하라는 의미도 아니지요.



그러나 제가 방관자가 되어 침묵할 수 밖에 없는것은, 저 스스로 선을 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선을 누가 정해줄수 있는것도 아니며, 필요에 의해 너그러워 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친분으로 슬쩍 저쪽으로 밀리기도 하고, 갑자기 타오르는 정의감에 이쪽으로 밀리기도 합니다.

평생을 산다고해도 그 선이 명확해져서 나의 선을 다른사람에게 댈수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이 글이 제가 회피했던 문제들에 대한 이슈를 되살리는 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냥 자신의 관점에 대해 헷갈리고,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매니아의 넋두리로 들어주세요.

(사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결론이 없습니다.)



ps.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의 의미는,

신,자아,도덕 등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 것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의미랍니다.

한참 철학에 관심있을때도 비트겐슈타인은 어려워서 넘어갔는데, 저 문장 만은 기억에 남아있었네요.

저도 글쓰다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