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캐나다 와서 처음 겪은 배틀 경험담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작년 5월경, 전 이민 온 지 한달 여 밖에 안된 초기 이민자로, 지금은 정직원으로 있는 회사에서
 
한창 직업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습니다. 워낙에 스파르타 식으로 교육과 과제를 수행해야했기에
 
새벽 2~3시에 자는 건 일상인 시절이었죠.
 
가족들은 다들 여기 저기 여행 다니고, 캐나다의 환경과 문화를 한껏 만끽하고 있을 때..
 
전 생애 처음으로 나와본 외국인데도 방 구석에, 회사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저를 더욱 down시킨 요인은, 한국에서 애써 배워온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면허증도 정식 면허증으로 교부 받았고, 가족용 세단을 고를 때도 제가 나서서 직접 골랐건만..
 
그놈의 보험료 때문에 절 보험에서 뺀것이었습니다.
 
(가족 중에 면허 있는 사람은 무조건 보험에 넣어야하는게 원래 법이지요)
 
차 키 까지 하나 갖고 있는데..
 
이 넓디 넓은 캐나다 땅에 많고 많은 차들 사이에서, 제가 도로위에 설 수 없다는 실망감은 컸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서 묵묵히 '언젠간 내 차를 갖고야 말리라!' 생각하면서..
 
가끔이나마 동네 한 바퀴라도 살살 운전 해보며 마음을 달래던 그 때..
 
그러던 하루 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새벽 2시 경에 과제를 마쳤는데,
 
그 날따라 어떤 이유에선지는 기억이 안납니다만 차를 타고 중심가인 17 ave를 달리고 싶은 욕망이
 
극에 달하더군요.
 
결국 액세서리로 주머니에 넣고만 다니던 차 키를 손에 쥐고 새벽 공기를 맞으며 밖을 나왔습니다.
 
심장에 새벽 숨을 불어넣어주길 기다리며 얌전히 깨어있던.. 포드 포커스 ZTS.
 

 
포드가 에스코트 후속 모델로 내놓아 전 모델 라인업(세단, 웨건, 해치백)에서
 
성공을 거둔 포커스 모델로,
 
세단 모델 중에 가장 좋은 사양을 갖춘 2.0 dohc 130마력 엔진을 가진 차였습니다.
 
"취취췽~ 슈웅~"
 
부드러운 시동음과 함께 땅을 박차며 굴러가는 16" 50 시리즈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감각에
 
오랜만에 핸들을 잡은 저도, 또 차도 떨리는 마음으로 번화가인 17ave를 나서게 됩니다.
 
새벽 2시면 이곳 사람들은 이미 집에 귀가하고 거리는 한산해지지만,
 
전광판, 가로등을 전부 다 켜놓은 번화가의 길거리는 제가 즐기는 새벽 드라이빙의 묘미를 더해줬습니다.
 
'그냥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지...' 생각 하면서 신호에 걸려 멈춰선 찰나..
 
바로 앞에 심상치 않은 다크 실버 색상의 차가 멈춰서 있었으니,
 
미쯔비시 엠블렘을 달고있는 랜서.. 그리고 랠리아트 팩토리 튠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제 눈을 꽉 채웠습니다.
 
미국 등지의 evolution 모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sohc 로 170마력까지 올려서 나오는
 
랠리아트 튠의 랜서 세단은 무시못할 퍼포먼스 지향의 차량이지요.
 
단조로울 수 있었던 새벽 드라이빙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서 나타나 준 랜서에 고마워하며,
 
전 나름의 거리를 두고 저 차를 졸졸 따르게됩니다. (상단의 사진은 그 때 찍은거구요^^)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을 거의 마쳤을 때쯤,
 
약 10m 앞에서 가던 랜서가 갑자기 깜빡이 등 점멸과 함께 급 우회전, 풀가속으로 골목으로 빨려들어갑니다.
 
랜서를 따르던 제 눈도 골목으로 빨려들어가고, 동시에 본능적으로 저도 스티어링휠을 세차게 차면서
 
풀가속에 들어갔습니다.
 
'아..아니? 쟤 왜저러지..? 뭐하자는건가..?' 하는 의구심은,
 
다음 이어지는 또 한 번의 골목 갈래길에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급 우회전과 동시에 풀가속을 시작하는 랜서.
 
'아.. 배틀이구나!'
 
이미 차간 거리는 2대 정도로 좁혀져있었고,
 
랜서 운전자의 능숙한 시프트다운에 이어지는 비틀리는 듯한 코너웤을 볼 때,
 
예사로운 양키 드라이버는 아님이 온몸으로 느껴져왔습니다.
 
포커스는 오토 트랜스미션이었기 때문에 골목길 코너 공략과 재가속에서는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코너를 돌았을 때 랜서는 이미 차 3~4대 이상으로 벌어져 쭉쭉 치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풀가속. 킥다운 되면서 위애앵~ 거리며 귓전을 울리는 ztec엔진의 회전음에 휩싸여
 
랜서를 추격해 갑니다.
 
길 양쪽엔 주택가 앞에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즐비하고,
 
중앙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새벽의 동네 골목 길을 그렇게 달린 게 몇 초..
 
170마력 사양의 상대 차는 따라올테면 따라와 보라는듯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흠..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가' 하면서도 오른쪽 다리는 악셀 페달을 짓누르며 죽어라 랜서를 뒤쫒고 있었죠.
 
그러다 나타난 4-way. 골목길 둘이 만나는 4거리가 나타났습니다.
 
4거리를 통과하고 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에 또 다른 변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구간임을 파악한 저는, 그대로 치고 올라갈 태세로
 
악셀 페달에 더욱 힘을 주어 랜서에 접근해갔습니다.
 
그러나...
 
순간 거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랜서의 꽁무늬에 퍼지는 빨간색 브레이크등.
 
죽어라 쫒아가는 제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지.. 랜서가 4거리의 "stop" 라인에 서버린 것이었습니다!
 
'아.. 추돌이구나.. 무보험인데.. ㅜㅠ'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며
 
오른 발은 추돌을 피해보려 풀브레이킹 모드.
 
"위이잉~ 기잉 기잉 기잉 드드드드드드드.. 끼긱!!"
 
1시간 처럼 느껴졌던 몇 초 간의 ABS 작동음.. 랜서의 1미터 후방에 아슬아슬하게 정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배틀이나 경쟁 경험이 전무하다 싶던 저로선 순식간에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이었고,
 
머리가 어질어질.. 하얘지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도 깡은 살아있어서 '나 아직 건재하다. 또 한 번 붙어봐?' 라는 뜻으로 
 
랜서 꽁무늬에 대고 하이빔을 마구 날려대던 기억이 납니다. ^^
 
하지만 이미 몸과 정신 상태는 긴장이 풀려 더 이상의 경쟁은 무리였고,
 
정지선에서 로켓 스타트로 오르막을 오르는 랜서를 무시한 채,
 
전 그대로 우회전으로 빠져 다시 17ave로 나온 후 안전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랜서 드라이버는 포커스의 마스크만 보고서, SVT 나 해치백 3도어 인것으로 생각하고
 
배틀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엔 새벽 드라이빙에서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지만 그 짧은 경험으로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 준 능숙한 랜서 드라이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장황했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부턴 포커스가 아닌 인테그라로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써볼까 합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