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4살 즈음부터 그림을 생활처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은 평범한 중산층이였는데, 당시에는 종이가 귀해 모든 노트가 누런 갱지를 사용할때였지요. 초등학교에선 겉표지의 뒷면과 뒷표지의 앞면까지 필기하도록 교육했었드랬는데, 그림 그릴 종이를 마음껏 사용하는건 낭비라는 생각에 아마도 제 부친은, 백묵으로 그릴 수 있는 칠판을 사주신거 같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이 학교에 가고, 부친은 출근하고.. 활동적이였던 엄니는 어린 저를 혼자두고 바깥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견스러웠던건 그 어린나이에도 별 두려움 없이 혼자 집에서 그림그리며 노는게 익숙했던거 같습니다.

당시에 매일처럼 그렸던건, 티비극 Wild Wild West 에 나오는 주인공(로버트콘라드 이름도 기억남.)의 모습과 주말극 Fbi 에 나오는 이미지들, 만화 황금박쥐와 요괴인간의 벰,베라,베로를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로.., 티비가 준 시각적 영향이 정말로 컸던거 같습니다.

미술전공을 결심한건 중학교때 아리따운 미술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술시간에 제그림을 보고는.. " 익렬이 넌 나중에 꼭~ 미술을 하거라." 했던게, 흠모하던 선생님이 제옆을 지나며 밝게 던져준 미소와 향기처럼, 늘.. 귓전에 맴돌았던거 같습니다. 고딩에 진학해 결심을 굳힐 무렵..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형의 친구가, 평생을 기억할 얘기를 던져줬습니다.

" 미술은 짧은 기간에 원하는걸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평생을 목표로 사명감을 갖고 해야할거야. 그러지 않으면 지치고 힘들게 여겨질테니.."

그 형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였겠지만, 이제 갓 전공으로 결정하려는 제 가슴엔,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운 말로 들렸고..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해 평생의 일로 삼기까지, 늘..제 뇌리에서 맴도는 말이 되었지요. 미술은 예술의 영역이라, 궁극적으로 가면 그사람의 세계관과 삶에 대한 가치관.. 심상의 깊이나 창의성이 한결 더 필요한 영역이겠지만, 위에 언급한 '사명감'의 근간인 '마인드'는 어느 영역에서나 필요한 가치인 듯 싶습니다.



80 년대 중후반쯤 대학가에서 선망의 대상이였던, 신촌블루스 출신 한영애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콘서트에서 그녀의 무대를 꽉 채우는 존재감과 관중을 압도하는 스케일, 가창력에 전율한적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쯤, 티비에 자주 출연하던 김지애라는 인기 트로트 가수가 있었는데.. 어느날, 두 여가수가 동시에 출연해 인터뷰하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를 잠깐 봤습니다.

나름 독특한 음색에 가창력과 꺾어지는 가락의 테크닉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김지애였지만, 한영애와 나란히 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보니, 거친음색에 제멋대로 부르는 듯한 한영애의 스타일이 선입견을 줘서도 그렇지만,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소견에 있어서도 두사람은 너무나 큰 존재감의 차이를 보여주는걸 보고 놀란적이 있었지요.


4년 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던 미술학교의 꿈을 어렵사리 접고, 젊었을때 부터 경험해보고 싶었던 프리딜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토리스 일은 딜을 겸하면서 할수있는 일이라, 특정회사에 속하지않고도 가능해 전차종을 다룰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AG 소속의 바로옆 사무실에서 일했던 여자분이 있었는데, 외산차 전문으로 일해 나름 라이벌 의식과 동료의식이 공존하는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관심사를 공유하다보니 친해져 늘 함께 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그녀는 10년 이상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근무해서인지 성실성과 책임감이 뛰어났고, 감성도 발달해 많은 대화꺼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차에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고, 그녀는 일의 특성에 대해 안내해줬습니다.  또 한분의 롤모델은, 저와 같은 AG에서 일한 영업소장 출신의 형님이였는데,  두사람 다 양사무실에서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멤버였지요.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사람의 공통점은 다마스를 팔던 벤츠를 팔던 똑같이 고객에게 친절도를 유지했고,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차별된 자세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 회사에 열두대의 차를 동시에 팔게됐던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그 일 이후로 전혀 차를 팔지 못했습니다. 어지간한 상담에는 콧방귀도 안뀌고.. "이딴차 한대팔아 뭐하게.." 하면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하고, 상담도 적극적이지않게 하니, 제가 보기엔 제가 고객이라도 그런태도엔 일을 맡기기 싫을거 같았습니다.



함께 레이스에 출전하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외곽와인딩에서 그룹드라이빙하며 단장에게 스킬을 트레이닝받던 시절.. 쭐루리 줄서서 달리는 동안, 늘..제차를 과격하게 추월해갔습니다. 저는 언제든 그친구를 추월할 자신이 있었지만, 위협적인 주행을 하고싶지 않았고 단장의 원칙도, 공도 연습중엔 추월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였지요. 물론 그친구는 운전도 잘했고, 과감성도 있었습니다. '운전은 용기로 하는것' 이라 생각하는거 같았지요.

연습이 어느정도 진행되고, 함께 경기에 출전했는데..당연스럽게도 첫경기의 랩타임은 그친구가 빨랐고 제앞에서 출발했지만, 앞차를 거칠게 추월하려다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함께 출전했는데 그친구는.. 단 한경기도 완주하지 못하고, 레이스를 포기하게 되었지요. 그 이후.. 시내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큰 사고로 갈비뼈 몇대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한동안 입원했다 나와서는, 레이스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스필버그는 70년대 중반, JAWS 라는 써스펜스영화와 스타워즈를 조지루카스와 함께 제작해 일약 스타감독이 되었죠. 긴박감을 몰아가는 특유의 기법과 새로운 시스템의 사용, 변화무쌍한 연출상의 스킬이 당시 영화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Color Purple 이라는 흑인소재의 영화에서 아카데미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인종의 문제와 흑인의 애환.. 휴머니티를 주제로한 그 영화에서도, 굴러떨어지는 물체가 도미노처럼 익살스럽게 움직이는 장면이나 몇몇부분에서 자신이 잘 한다고 생각하는 Skill 에 집착해 영화전체의 '격'을 떨어뜨리는걸 발견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그해 노미네이트만 되고, 당시 아카데미 감독상을 놓치게 되었지요.

얼마후.. 쉰들러리스트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절제된 연출방식으로 본인의 Skill 을 극도로 자제한 편집과 기획을 통해 그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영화들인 '라이언일병구하기' 나 기타영화에서는 작품의 컨셉에 따라, 예술성을 조절하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차와 드라이빙 매니아의 다양한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면, 재미있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공학에 정통한 사람이나, 스펙에 정통한 사람.. 튜닝품목의 이름을 잘 외우는 사람이나 각 브랜드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정통한 사람.  재료학이나 물리학에 조애가 깊은 사람이나, 최신정보..마케팅 시스템에 관심있는 사람등, 다양한 관심사를 그사람의 글을 통해 보는것이 즐겁고 새롭습니다. 드라이빙에 관해서도 관심분야가 조금씩 다르고,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다릅니다.

저는 차에 관해 아직은, 전문가가 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는데.. 가끔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매김하는 캐릭터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일정한 레벨에 올라선 사람이 '자신의 스킬을 버리거나 초월함으로 얻는 궁극적인 레벨' 의 경지를 흠모하게 됩니다. 이는.. 보이거나 알고있는 현상이나 사실을 조합해 의미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이고, 집중하는 부분에 대해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여유있는 시각도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모든 매니아가 그런 심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요..


꺾어지는 창법의 간드러지는 감성으로 특정연령대의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가수도 있지만, 대중을 압도하고 존재감 자체로 열광시키는 스케일의 가수도 있는것 처럼.., 모든 분야에 있어 궁극의 지향점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어필함이 아니라,  파괴하고 포기하고 극복하는데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