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비를 전혀 사용안하고 운전해 왔는데,

요즘 여러분의 추천에 따라, 코딱지만한 티맵 내비를 켜놓고 운전하는데 아주 재미가 들었습니다. ㅎ

 

 

제가 아주 어렸던 네살즈음, 동네엔 티비 있는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67년 무렵)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였지만, 아버지가 당시론 나름 얼리어댑터여서 어느날 금성(LG) 19인치 다리달린 티비를 사오셨는데.. 김일 레슬링이나 복싱중계가 있는 날이면 동네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안방문을 열어놓고 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티비를 보곤 했었지요.  그 어린 나이에 즐겨보던 프로는 외화 '와일드웨스트' 나 'FBi'  ' 제9전투폭격대' 등이였습니다.  70년 이후 세대만 하더라도 모르는 제목 일 듯 싶네요.^^

 

초딩에 들어갈 무렵, 엄마의 일본친구가 보내준 자석필통을 처음 갖고 다녔는데.. 뭇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었습니다.  2학년 때는 아버지가 젊은시절 차시던 Enica 손목시계를 물려주어, 가끔 한두명.. 미키가 그려진 만화시계 차는 친구들처럼..부자인 줄 알았드랬습니다. 후에도 전축, 카세트 녹음기, 스테레오 라디오 등등.. 전자제품에 관한 한 주변보다 항상 먼저 사용했고,  전화기가 하나 둘 놓아질 무렵엔, 대부분 대표번호에 교환방식으로 쓰던때임에도..우리집은 비싼 백색전화기(직통)를 개설해서 썼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첨단 가전제품을 거의 남들보다 먼저 샀고.. 90 년대 초, 벽돌만한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때도 얼마 안되서 비싼 보증금을 내고 주변사람들 보다 먼저 썼는데..  PC 가 일반화 되던 시절부터는 조금씩 얼리어댑터 대열에서 멀어져왔던거 같습니다.  마흔이 될 무렵 부터는 그나마 남들보다 항상 먼저 지르던(?) 자동차도 조금씩 지난 뒤에 바꾸게 되고.. 핸드폰도 조금 지난 모델로 구입해가기 시작한듯 합니다.

 

 

 

2천 년대 초, 내비들이 차에 달려 나오면서.. 신기하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길이 그리 금방 바뀌지 않았고.. 그간의 운전경험으로 어지간한 곳은 다 찾아갈 수 있어, 길모르는 어리버리 운전자들한테나 필요한 걸로 알았죠. 십년이 지난 바로 얼마전까지도 필요성을 거의 못 느꼈으니.. 참 많이도 무뎌진거 같네요.ㅋ

 

안그래도 요즘 오토밋션 차를 타면서, " 아이고.. 느무느무 편하다~" 흥얼거리며..  마치, 피곤할때 사우나 온탕에 몸을 담글때나 내는 탄식음을 내곤 하는데,  핸폰의 티맵을 열어서 대쉬보드에 낑궈놓고 운전하니.. 이거.. 세상 편하고 좋습디다.  목적지를 눌러 놓으니, 평소엔 세월아 네월아 하고 가던 길 말고, 쑥쑥 빠지는 길로 안내해줘 시간을 절반이나 절약할 수도 있고,  굳이 그림 보지않아도..일루 빠져라 절루 빠져라~ 알려주니,  달리는 동안 뇌가 멀티태스킹 하지 않아도 되어 넘 좋더군요.

 

요 며칠은 강동구쪽에 볼일이 있어, 남가좌동 집에서 몇번 왕복했는데.. 강변으로 갈지, 내부순환로로 갈지 착착 정해줘서 참 편했습니다. 강변로 같으면 뻔히 막힐 시간인데.. 내부순환로는 거의 고속크루징이 가능하게 열려있고 그러네요. 잠시 막히면 암 생각없이 오토모드로 밀어넣은 뒤.. 음악좀 올려놓고 티맵이 시키는대로 우측이나 좌측으로 붙으면 되고,  길 열리면 수동모드로 옮겨 다이나믹하게 잠시 달리다,  과속감시 구간을 알려주면 설설 줄이면 되고.. 흐.. 완전 편합니다.

 

90 년 즈음.. '난 로드킹이 될거야~' 고 결심해 처음 dohc 차를 샀을때부터,  레이스에 입문 한답시고 멀쩡한 차 구루마 만들어, 쿠션대신 궁둥이살로 팅팅거리며 다니던 시절을 거쳐,  낼모래 50을 바라보는 근래까지.. 거의 대부분의 운전하는 시간을 치열하게 보낸거 같습니다.  '사나이는 배기음을 즐겨야지, 왠 오디오에 차안에서 낭만을 찾는검?'  그런 생각으로 무조건 빨리 달리려고만 했었는데 요즘은..  차안에서 느끼는 바깥 정경과  따뜻한 햇살.. 천천이 달릴때 귓전을 감싸는 로맨틱한 보사노바의 달콤한 가락.. 시끄럽게만 들리던 FM 박명수의 막되먹은 멘트까지도 가끔은.. 정겹게 들리기도 합니다.

 

 

 

수년 전.. 평생 업으로 생각했던 일로부터 어렵게 탈출할때는.. '나한테 이런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 하며 지나간 내 캐릭터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는데,  또다른 사회생활을 경험해보니.. '세상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자동차 안에서도 그동안 온통 머리속을 채웠던 레이스에 대한 열망 속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보니..,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정말 많은 색다른 즐거움이 있는걸 알게 되더군요.

 

인생은 이렇게.. 치열한 시기와 완만한 시기를 반복해가며, 세상은 넓고 할일이 많은걸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지만, 비슷한 시기가 반복되어도 이전처럼 어리석지 않게 됨을  스스로 믿고 느껴가는게 참.. 좋습니다.

 

 

 

 

 

이게 다.. 티맵 때문이다..  ㅡ,,ㅡ;;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