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에 잠시 있을 무렵인 93년말과 94년초에 구입한 82년형 볼보 240DL이라는 녀석은 당시 볼보의 장점을 두루 가진 참 좋은 차였습니다.

25만킬로가 넘어갔어도 영하 35도의 추위에 시동이 잘 걸렸고, 안전한 차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도장과 자체가 튼튼했었습니다.

배선 문제로 인해 볼보 정비공장에 들어갔을 때 너무도 가지고 싶었던 차종이 760GLE였었던 것은 그만큼 오래된 240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입니다.

볼보가 포드로부터 자유롭게 차를 개발할 시점까지의 볼보가 지금의 볼보보다도 아이덴티티가 훨씬 강하고, 당시 만들어지던 차들과 비교하면 품질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번에 시승한 T-5R은 DTM에 참가하기 위해 한정으로 생산된 차종으로 5기통 2.4리터 240마력의 순정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세단과 웨건형 두종류가 있습니다.

96년도 850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170마력 사양 GLT를 타보고 배기음이 좋다고 생각했었고, 학창시절 어떤 아주머니가 엄청나게 빨리 모는 850터보(220마력 사양)를 쫒아갔던 기억등 당시의 볼보는 제게는 상당히 세련된 차였습니다.

T-5R역시 한번 조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A6 3.0q를 타고 경기고등학교 언덕을 넘어가면서 추월을 시도했는데, 뒤늦게 가속을 한 T-5R의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만 있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승차를 절친한 지인이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슴이 다 설레였던 것은 볼보가 나름대로 모터스포츠를 위한 정신이 살아있을 때 만든차를 타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검은색 바디에 건메탈 휠은 T-5R의 상징이며, 당시 수입된 웨건은 건메탈이 아닌 실버색상의 휠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5기통 특유의 회전 느낌은 4기통 보다 훨씬 회전이 부드럽고, 6기통보다는 좀 카랑카랑해 6기통보다 스포티합니다.

볼보의 NA 5기통 엔진은 압축이 그리 좋게 느껴지는 엔진이 아니기 때문에 고속빨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합니다만 터보는 간접경험으로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T-5R은 최고속이 250km/h일 정도로 심각하게 맘 먹고 세팅한 엔진이기도 합니다.

시승후 느낀 점은 일단 순정의 파워가 다 나오지 않는데, 아무래도 터빈쪽과 파이핑쪽을 손봐야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롤링 배틀에서 5세대 GTI와 엇비슷하거나 약간 쳐지는 가속력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200km/h가 넘어가면 급속도로 가속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240마력이 다 나오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상 출력이었으면 GTI를 충분히 따돌려야 정상입니다.

이미 오너가 터빈의 오버홀을 계획하고 있고, 전 오너에게 들은바가 있기 때문에 엔진은 조만간 순정의 힘찬 파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파워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놀라운 것은 850이라는 네임이 모양이 거의 같은 S70으로 바뀌었을 때의 차들보다 오히려 샤시의 세팅이 정교하고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단단하지만 S70이 잔충격을 전혀 걸러내지 못하는 조악한 서스세팅이어서 실망을 엄청했던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T-5R의 세팅은 몇배는 세련되고, 밸런스가 좋았습니다.

오히려 요즘 S60 T5의 그것보다 인상적이었고, 고속 브레이킹 상황에서의 후륜의 움직임도 안정감이 좋았습니다.

4단 자동변속기는 급가속시 변속될 때마다 앞으로 튕겨나가는 충격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기어비가 낮아 토크가 좋은 고압 터보 엔진에 잘 맞는 세팅이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알칸타라 재질의 시트와 10년이 넘은 세월에도 큰 잡소리없이 고급스러운 주행감각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앞으로 순정의 파워를 되찾기 위한 현오너의 노력이 추가되어야 당시 DTM에서의 활약을 위한 Spirit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볼보 S60R의 전신이기도 한 T-5R은 S60R의 시승기에도 언급했지만 이처럼 훌륭한 기술이 일반 모델에 전이되지 못하는 단절과 한계가 아쉽습니다.

T-5R과 S60R은 제 경험으로 하이테크와 특별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차종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정도로 훌륭한 차였습니다.

일반모델들이 이러한 혜택을 좀 더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이루어진다면 볼보는 한번 더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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