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일에 오래 몰두 해오다 보면, 그 일을 행하는 상대의 작은 움직임에도 현재상황이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가, 무엇을 엎질러 난처한 상황의 숙녀에게 재빨리 손수건을 뽑아주거나, 앉으려는 숙녀에게 의자를 빼 주는것.. 대화중 주저주저하는 상대에게, "화장실은 카운터 오른쪽입니다." 하고 알려 주는것..

사교에 능한 사람이, 클라이언트가 술마시는 페이스를 보며 적절한 시기에 술을 따라 준다든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캐치해,  먼저 배려하는 것 등등.. 생활의 달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끔..인간의 직감능력은 한계가 없다는 걸 실감하기도 합니다.



운전 초기에, 가끔 택시를 타면 기사가.."저좌식 술쳐먹었구나~" 하고 욕을 하는데, 옆에서 봐선 별 움직임 없어 보여 의아하게 생각한적이 있었죠.  좌회전 신호시 바깥차선에 함께 코너를 진입하는 버스의 회전반경이 안쪽으로 파고들거란걸 예상하지 못하거나,  전방에서 내차선 쪽으로 급작스럽게 파고드는 차량의 전방에 급정거하는 차량이 있을거란 예상을 하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전 바이크 사고로 무릎을 크게다쳐 군대에 가질 못했는데, 대학때 교련학점을 위해 전방부대에 갔을때, 함께 철책선을 들여다 보던 위병이, 암흑속에 아무런 소리도 보이지도 않는데, 다가오는 장교에게  암구호를 외치는걸 보며 놀란적이 있습니다. 과연..경험과 연륜이란건 보이지 않는것도 볼 수 있는 것일까..

어떤 회사에, 일본에서 대규모 기계설비를 들여와 국내 공장에 설치하고 가동 중, 작동에 이상이 생겨 매뉴얼에 따라 고치다고치다 안돼서 일본미캐닉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을 줄 알았더니, 똑같은 방법으로 한국 기술자의 열배이상 재시도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기계는 잘 작동되게 되었는데, 고쳐진 이유는 바로 연륜에 의한 '믿음'이였죠.



고속도로를 급히 달리던 중,(정말 중요한 시간약속으로 급할때) 옆차선으로 추월 들어가려는 순간, 속도를 올리며 막아서는 차들이 있습니다. 빠져나갈 여유는 없고..  이런 경우 자주 써서는 안될 방법이지만, 내 앞차에 범퍼 투 범퍼로 바짝 붙어 우측으로 빠지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줍니다. 처음엔 못된 마음에 가로막으려 했던 우차선의 차량이 심리적으로 공간을 내주게 되고, 그리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됩니다.

경기중, 선행 라이벌을 앞서려면 같은 성능의 차로는 어렵습니다. 각 코너마다 좌우 페인팅을 써서  좌우 싸이드미러에 눈을 번득이는 후미차량의 위협에 신경쓰여 실수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라이벌의 단순히 레코드 라인을 막으면 된다는 생각은, 언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파고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져 한순간 언더를 일으키거나 트레일 라인을 벗어나게 되죠. 이때 추월할 수 있게 됩니다.



운전 10 년 이상이 되면, 주변 차량의 모든 정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죠. 이또한 관심의 집중도에 따라 파악능력이 달라지지만요. 암생각없는 아줌마 드라이버는 20 년 해도 잘 모릅니다.

얼마전 고객중에 한분이, 모 외산차 시승을 원해서..조수석에 동승해 시내를 달린적이 있습니다.  운전 내내 말이 너무 많아서, '집중력이 떨어질텐데..'하고 걱정하고 있었죠. 강남구청앞 사거리 3차선에서 학동사거리쪽으로 신호를 받아 출발하려는 순간, 2차선의 낡은 프린스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늦게 우회전 해야한다는걸 아신거죠. 엉거주춤 다가오는 차를 보는순간  전.. '노인네가 길을 잘 모르는구나' 했는데, 고객은 그대로 직진.. 왼쪽 펜더에 상처를 입게 되었죠.

프린스를 모는 노인네의 잘못이긴 했지만, 프리딜을 하는 내 입장에선 딜러사에 미안한 일을 발생시키게  된거죠. 고객이 쉬지않고 중얼거리지 않았다면 접촉을 피할 수 있었고.. 상상력을 동원하면 피할수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카 & 드라이빙 매니아의 독특한 점은.. A 에서 B까지 이동하는 목적지 지향이 아니라, A~B 까지 달리는  과정을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이죠. 제가 감성적인 편이라 그런지.. 고속이든 저속이든 달리는 동안, 눈과 귀에 펼쳐지는 풍경에 늘..관심을 갖게 됩니다.

전방에 한대의 승용차가 고속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소형차량이고.. 네명의 장정들이 타고있는  실루엣이 보입니다. 젊은 남자 드라이버고 친구들이 타고있으니 영웅심에 불탈겁니다. 저차를 따돌리려면  '한방에 따라올 엄두도 내지 못하게 추월하거나, 부드럽게 전의를 드러내지않고 다른차를 사이에 두고 추월하는게 좋겠다.' 란 생각이 스쳐갑니다.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무리하게 빠른속도로 달리는 차에 '높고낮은 실루엣으로 보아, 가족이 함께 타고있다..'
내가 추월해 달리니 무리해 쫓아온다면, 페이스를 낮춰줘야 합니다. 운전자는 이기적이고 움직임이나 스킬 수준이 모자란다면 더더욱 그렇죠.  

얼마전엔 늦은시간 분당 정자에서 수서간 도로를 타고넘어와 강변북로로 연희동 집까지..20분대를 돌파해보려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중이였습니다. 달리고 있는 모든 차를 엄두도 못낼 속도로 따돌리며 달리는데  유독, 승객이 타고있는 택시한대가 절 의식하고 계속 진로를 막으며 빠져나갑니다. 후미에 붙어 한동안 달리다   양화대교 북단쯤 터널 진입전에, 급히 진로를 바꿔 다른쪽 터널의 바깥쪽으로 다른차의 옆에 숨어 그택시의 시야에 다른차가 가려지게(몰래) 추월하고, 멀찌감치 추월해 달렸죠. 공포에 떨고있을 승객이 떠올라서  입니다.  제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페이스를 늦추는 택시를 룸미러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깥길에 정차한 승용차 때문에, 급히 안쪽 차선으로 밀고 들어오는 버스..
손님 한명 더 태우려고 길 중간을 막고 정차한 택시..
신호대기에서 잠시 무엇을 찾거나, 급한 전화를 받느라 빨리 빠져나가못한 선행 차량..
초행길이라 진입로를 늦게 발견, 황급히 차선을 바꾸는 어리숙한 운전자..

퀵배달 목적지를 찾느라, 차선을 배회하며 두리번 거리는 소형 바이크..
안타까운 양카룩에, 핸들잡은지 얼마안되어도 자존심때문에 기를쓰고 달라붙은 운전자..
핸들에 달라붙어 주변차에 아랑곳없이 앞만보고 달리는 둥근퍼머머리 아줌마 드라이버..



항상 그러진 못하지만, 드라이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도로에서..
그들의 선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해 봅니다.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