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토요일 정재필님 따님의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포항에서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코스의 절반정도는 꼬불꼬불한 지방도인데 나름 재미난 코스여서 신나게 달릴 수 있습니다. 전 출고 후 만 4년 반이 된 클릭R을 타고 있는데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쉬프트 레버 뭉치를 신품으로 교체해주었더니 교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변속 케이블과 맞물려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양상규님의 손길이 닿은 심장 역시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아주 기분좋게 돌아가줘 절 업시킵니다. 출고 후 500km만을 주행한 후 경기에 참가하고 빡시게 굴려왔는데도 삐그덕거린다거나 하는 잡소리는 안들립니다. 제동력 역시 초고속에서의 한계 제동 상황만 아니라면 순정 상태에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4년 반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더니 이 놈은 마치 제 몸의 일부 같습니다. 정말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움직입니다.FF+수동으로 해볼 수 있는 잔재주란 잔재주는 모두 부리면서 달립니다. 변속 시 클러치는 밟는 둥 마는 둥 하고 노면이 젖어있기만 하면 헤어핀 등지에서는 사이드 드리프트를 시도하죠.(요즘 아무래도 드리프트가 대세이다 보니 FR은 없고ㅠㅠ) 그렇게 다시한번 제 차에 만족하며 울산으로 내달렸습니다.


돌잔치는 즐겁게 마무리되었으며 오랜만에 표세원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애마 GTI를 타고 오셨는데 제게 한마디 날리십니다.

'동규야. 함 타봐야지?'

오홋! 당연히 한 번 타봐야죠. 이상하게 기회가 오지 않아서 5세대 GTI는 앉아보지도 못했었거든요. GTI와 처음으로 함께한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첫경험은 예전 장가이버님의 2세대 GTI였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95년식 아반테 1.8과 91년식 엘란트라 1.6을주로 타고 다닐 때 였는데 그 두대와 비교되어 더 오래된 GTI는 흔히 말하는 '강성감'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뭐 2세대 GTI의 출력은 논외로 하겠습니다^^어쨌든 그 때까지 타본 국산차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단단함을 느껴봤었고 지금까지 몸이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연 5세대 GTI는?


시승은 울산 문수 구장에서 시작되었는데 전 그냥 '구장 한두바퀴'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기회가되면 풀악셀이나 한번 해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원님께서 '바쁘지 않으면 양산, 언양으로 해서 한바퀴 돌자'라는 거절할 수없는 제안을 하십니다. 대답이야 다들 아실테고 세원님의 뒤이은 질문은

'고속도로를 달려볼래? 와인딩을 타볼래?'.

저야 초고속주행에는 별 취미 없는지라 당연히 와인딩을 즐겨보고 싶었지만 노면이 젖어었었고 기온이 떨어지고 있던터라 위험할 것 같아서 아쉽지만 고속도로 주행을 택했습니다. 아우토반에서 단련된 독일차의 고속주행을 느껴보는것도 물론 나쁘지 않았구요. 그렇게 GTI와의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첫 느낌은 역시 차가 단단하고 꽉차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실내는 그냥 보기만했을 때는 소위 뽀다구도 안나고 저렴해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타고사용해보니 품질감, 장치들의 조작감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오너를 즐겁게 해주는 재미난 기능들이 많더군요. DSG는 처음 접해보았는데 극저속, 언덕출발의 상황에서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외의 상황에서는 오토차랑 별 다를바가 없으면서도 수동만의 전유물이었던 직결감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얄미웠습니다.

시내에서 몇번의 풀가속을 해보았는데 2000rpm부근부터 터빈이 돌며 훌륭한 토크감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제느낌으로는 2000rpm부터 끝까지 플랫토크는 아니었고 5000rpm을 조금 넘어서까지 토크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다가 그 이후 6500rpm까지는 토크가 죽는 느낌이었습니다. 칩튠 때문에 토크 곡선이 쏠린것이겠죠? 그래도 초반부터 워낙 두터운 토크가 나와줘서 정말 좋았습니다. 엔진 역시 가솔린 2.0 TURBO인 주제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돌아가 줘서 DSG와 함께 많이 얄미웠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려 양산까지 달렸습니다. 차가 별로 없는 곳에서는 주욱 밟았는데 시원하게 나가주네요. 220km/h정도 까지는 아무 스트레스없이 파셜 악셀링만으로도 쉽게 가속 되었으며 180~200km/h 항속도 너무 쉬웠습니다. 계기판상 240km/h까지도 쉽게 달려주었으나 그 이상은 악셀을 좀 바닥에 비벼야 해서 시도하지 않았습니다^^아우토반 태생 답게, 듣던대로 고속 주행능력도 탁월 했고 전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옆자리의 세원님은 불안하셨으려나^^)

양산으로 나와 새로 개장한 ???? 스키장을 지나 밀양댐으로 달렸습니다. 밀양댐 근처의 와인딩 코스는 달리기 아주 좋았습니다. 노폭은 조금 좁으나 야광 돌돌이들이 잘 박혀 있어서 시야가 아주 좋습니다. 노면 조건 역시 많이 좋아져 있었습니다. 언제인가부터 와인딩 코스에서 목숨걸고 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데다가 제차도 아닌 남의 차를 운전하고 있으니 긴장되어 기본적인 운동 특성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라인을 그리는 것에만 신경쓰며 가볍게 달렸습니다.

잠깐 잠깐 나오는 직선 구간에서 조금 밟아주고 급한 코너가 나오면 브레이킹을 시도하며 스티어링 휠 뒤의 스위치를 딸깍 거려 쉬프트 다운을 시도합니다. 이 얄미운, 재수없는 DSG 란 놈은 깔끔하게 쉬프트 다운을 완료하네요. '내가 왜 개고생을 해서 힐앤토를 마스터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너를 클리어 하고 직선에서 2단으로 풀가속을 하면 그 즉시 ESP가 개입합니다. 어느 정도 마른 노면에서도 그러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된 LSD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세원님께서 LSD가 달려 있긴 하나 스포츠 주행용은 아니라고 해주시더군요.

아무래도 기본적인 차량 무게가 있는데다가 프론트가 무거운 FF 해치백이다 보니 와인딩을 타기 이전에는 차가 참 둔하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FF 해치백이지만 가볍고 전륜 서스펜션의 모든 부싱들이 우레탄으로 바뀐 차를 타다보니 왠만한 차는 뭘 타도 둔하다고 느끼긴 합니다. 하지만 와인딩을 가볍게 달려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스티어링휠로 전륜 바퀴에 어떤 명령을 내렸을 때 차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지만 일단 반응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믿음직스럽습니다.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수정 동작이 필요없었으며 의도한 대로 순하고 정직하게 반응하네요. 운전자를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브렘보 전륜 브레이크 시스템은 감동이었습니다. 절대 제동력이야 요즘 뭔차를 타도 충분하므로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제동감, 필링이 예술이네요. 절대 꽂히지 않으면서 밟는양에 비례하여 강해지는 제동력은 운전을 너무 편하게 해줍니다. ABS를 해제하고 해제하고 달리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밀양댐에 도착하여 커피 한잔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와인딩을 타기 전까지만 해도 차가 몸에 착 달라붙는 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와인딩을 가볍게 달려주니 몸에 착 달라붙네요. 그제서야 적응이 된거죠. 돌아가는 길은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즐겁게 달려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차종 불문하고 이렇게 제대로된 시승을 해본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일상주행도 해보고 최고속도 내보고 와인딩도 즐겨보고 말이죠. 훌륭한 점도 많지만 듣던것처럼 세계 최강 천하 무적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대단하다는 강성감에 대해서는 솔직히 글쎄요 라는 생각입니다. 일단 제차에 세미 롤케이지, 우레탄 부싱들이 둘러져 있어서 단단한 것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국산이고 외제고 요즘 새로 나오는 차들은 모두 이정도는 되는 것 같다가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GTI가 덜 훌륭한 것이 아니고 다른 차들이 좋아진 것이죠.

그리고 역시 해치백 FF입니다. 서스펜션의 느낌은 독일 FR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무게 배분이 좋지 않은 물리적인 한계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지요. 와인딩에서의 기본적인 차량의 움직임이나 느낌역시 FF세단이나 FF쿠페와도 다른 FF 해치백만의 그것이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FF 차량들을 시승해보면 '물리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 어느 수준의 한계를 정해놓고 차량의 느낌이 그 수준안에 들어오면 괜찮은 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GTI는 그렇지는 않네요. 분명 생긴대로의 특성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완성도가 상당합니다. 아주 잘 여물었다고 해야 하나요? RR인 911이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프론트가 가벼워서 나타나는 특성을 숨길 수는 없지만 주행 감성이 훌륭한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물론 911과 GTI가 비교할만하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느낄 승차감은 영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국산 FF 승용차에 딱딱한 종발이식 서스펜션을 장착했을때의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더군요. 5세대 GTI가 정식으로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매니아가 아닌 일반 구매자가 이런 순정 승차감을 인정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일도 아닌 한국인데...

여튼 시승을 마치고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6년 태백에서 열린 PWRS에 참가하고 포항으로 돌아오는데 제 클릭R이 차 같지도 않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다행히도 그 때 그 정도의 느낌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클릭R이나 GTI나 기본적인 레이아웃이 같은 차이다 보니 사이즈부터 모든 특성들이 전체적으로 '-' 되었다라고 느껴질 뿐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GTI는 클릭R을 타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모두 멋지게 해결한 채 지니고 있는 차여서 그런지 클릭R을 타고 돌아오는 내내 차가 마음에 안들긴 했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GTI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즐겨야죠. 중간에 차를 세우고 사일렌서를 빼낸 후 오른발과 오른손이 내린 선물인 쉬프트 다운, 힐앤토를 필요 이상으로 즐기며 달려왔습니다.

GTI..제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차였으며 그 명성이 괜히 생긴것은 역시 아니었습니다. 가격대 성능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로 만능인 녀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놈인 것은 분명합니다. 요놈을 타보니 혼다의 TYPE-R버전 FF들이 타보고 싶어지네요^^

생각치도 못했던 시승을 허락해주신 표세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동네 한바퀴 시승을 생각했던터라 기름값이고 톨비고 커피값이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차에 올랐어서 죄송스럽네요. 나름대로 와인딩을 살살 한다고 했는데 혹시나 찔끔찔끔 하셨으면 그것도 죄송

아....세원님의 GTI는 APR 칩튠으로 240마력을 내며 브렘보! F50이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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