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곳에 이런 글을 쓰는걸 성격상 좋아하지도 않고 현재 처한 입장상 유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몇 자 적어봅니다. 주된 이유는 '답답해서'입니다.

저는 현재 EV 배터리쪽 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EV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EV시장이 커지고 세상이 '친 전기차' 쪽으로 갈수록 제 환경은 좀 더 일하기 좋은 쪽이 될 겁니다. 저는 EV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EV가 싫다거나 신뢰할 수 없다거나 위험하다거나 해서가 아니고 그냥 딱히 필요를 못 느껴서입니다. 사람들이 EV를 좋아하는 이유,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니 거기에 대해서 뭐라 평가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 이유가 '세상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EV를 타면 환경에 좋아서,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어서'라면 그건 좀 잘못된 이유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아래 이동섭님이 정리해주신 '미국의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량의 1대당 탄소배출량 비교'에 대해 의견 드립니다.
이동섭님은 엔지니어이신걸로 보입니다. '범위'를 '정의'하고 계시거든요. 해당 자료는 '미국'에 한정된 내용입니다. 미국에선 EV의 대당 탄소배출량이 ICEV의 대당 탄소배출량보다 높은 게 맞습니다. 하지만 유럽, 그 중에서도 에너지생산을 청정에너지로 대부분 전환한 독일에선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명백히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독일의 전기요금은 MWh당 344.7USD로 미국의 132USD에 비해 2.6배 수준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에 이동섭님의 말씀을 반박하고 싶어하는 의사, 혹은 필요가 있었다면 이런 내용은 빼고 그냥 저 유리한 부분만 골라다가 그럴듯한 결과를 도출해서 반박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는 EV 예찬론자가 될 수도 있고 ICEV의 골수 매니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은 둘 중 아무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통계는 이런 겁니다. 단순히 비교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해당 숫자가 뭘 이야기하는지 파악하려면 메세지가 도출된 과정과 메신저의 의도를 모두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건 능력이나 지식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지능과 태도의 범주에 속합니다. 진짜 내포된 속내가 뭔지를 일단 알고 싶어해야 하고,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일정 이상의 사고력을 필요로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수준이 높지 못합니다. 때로 보면 쥐떼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디서 그랬다더라~ 는 말이 들리면 출처의 신뢰성, 번역의 정밀성, 검증의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그냥 믿습니다. 그리고 한번 믿게 된 어떤 사실은 확증편향으로 굳어집니다. 그 뒤로는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습니다. 떠먹여줘도 씹으려고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뱉어버립니다.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습니다. '니가 저 사람들보다 잘 알아?' 내가 너보다 잘 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합니다. 그리고 권위있는 걸 믿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럴듯해 보이는 걸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 여러명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게 되면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해당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를 믿기 시작합니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집단의 의사결정이 별로 정의롭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유입니다.

이제 다시 친환경 차량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친환경 차량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명백히 '아니오'입니다. 금속을 채굴하고 제련하고 가공해서 뭔가를 만드는 행위가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라면 제 대답은 항상 아니오일 것입니다. 친환경을 논하는 건 애초에 논외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저공해'입니다. 무엇이 더 좋으냐가 아니고 무엇이 덜 해롭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공해 관점에서라면 EV가 배출가스를 생성하지 않으니 더 좋은게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일단 '현 수준'에선 절대 '아니오'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모든 리포트 -감히 모든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에선 ICEV와 EV의 제조, 운행까지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EV가 절대적으로 공해를 일으키고, 특히나 탄소배출이 많은 부분은 '폐차 후의 처리'부분입니다. 모든 연구보고서에선 이 부분을 블랭크 처리하거나, 언급하지 않거나, 추후 기술개발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 시점에선 완전히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지구온난화를 막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선 뭘 해야 되느냐는 의문이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EV가 ICEV보다 '환경적인'측면에서 더 좋지 않다면, 더 좋은 대안을 제게 제시하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ICEV대신 EV를 타는 것 대신, 차량 운행 자체를 줄이시라고' 조언드리겠습니다. 대중교통을 적극 활용하시고, 생활에 있어서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시기 바랍니다. 1인이 탑승해서 운행하는 경우를 최소화하고 카풀을 이용해서 이동하시며, 가급적 버스와 지하철 운행 범위 내에 거주하시거나 멀리 거주하실 경우 대중교통 거점까지만 이동하시고 목적지까지 차량을 이용하시는 걸 지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V차량을 타서 환경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시는 건, 다이어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햄버거 대신 국밥을 먹었으니 살이 빠지겠지라고 기대하시는것과 비슷합니다. 살을 빼고 싶으면 먹는 양을 줄여야 합니다. 뭘 덜 먹어야 빠지지, 살 빠지는 무언가를 먹어서 빠지지 않습니다. 총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싶다면 차량 이용을 줄여야 하지, 다른 방식의 차량을 이용하는 게 해답이 되진 않습니다. 특히나 EV SUV라는 끔찍한 혼종이 나오는 상황에서 무겁디무거운 대형 차량을 전기로 굴린다고 환경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건 어불성설입니다.

여긴 차 좋아하는 사람만 모인 공간입니다. 일단 최소한 저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차량간 비교가 있을수도 있고 우열을 가릴수도 있습니다. 다만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섹시한 차량은 환경에 대단히 유해합니다. 그리고 그건 ICEV든 EV든 마찬가지입니다. 섹시한 EV가 있다면 그건 환경에 분명히 유해합니다. 최소한 섹시하지 않은 EV보다는 유해하며, 섹시하지 않은 ICEV보다도 유해합니다. 환경에 도움이 되길 원하신다면,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물려주고 싶으시다면 EV를 고려하지 마시고 1.5ton 미만의 가벼운 차량을 고려하십시오. 특수목적이 아닌 경우 SUV를 선택하지 마시고, 불필요한 차량운행을 최소화하도록 하십시오.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 편리함과 쾌적함을 조금 내려놓으십시오. 빠른 차, 재밌는 차 대신 가벼운 차에 최대한 여러 명이 함께 타고 이동하십시오.

그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테드에서는, 그 정답을 선택하실 분이 많진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