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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땐 나이들면 S2000같은 차 한 대쯤 타고 있을 줄 알았는데...


0. 프롤로그 - ‘곧 마흔, 펀카가 삶의 낙(樂)이 될 수 있을까?‘

어릴땐 취업하고 자리좀 잡으면 펀카 한대쯤 굴리고 있을 줄 알았죠ㅎ

제가 86년에 태어났으니 내년이면 이제 마흔, 

결혼하고 애 놓고 살다보니, 

'진짜' 하고픈 건 늘 저멀리 미루거나 적당히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11월 중순? 즈음이었을 거에요. 

새로 옮긴 직장생활과 쌍둥이 육아에 지쳐 매일매일 녹아나던 중인데,

불쑥 ‘작고 빠른 해치백 하나 있었음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족차는 왜건 한대 있으니 나 혼자만을 위한 장난감 같은 차라도 한대 있으면, 

애들 재우고 잠깐 근처 바닷가 가서 커피라도 한잔 때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출퇴근 길 하루 30분이라도 좋아하는 차 타고 잠시잠깐 즐거울 수 있다면, 

고단한 일상이 조금 더 견딜만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부쩍부쩍 들더라구요.

남들은 나이 마흔이면 불혹(不惑 - 엄한 유혹에 휘둘리지 않음ㅎㅎ)이라고 하던데,

'가장이자 쌍둥이 아빠라는 놈이 나 하나 좋자고 여윳돈 이런 데 쓰는게 맞나?' 싶은 마음의 소리도 있었지만,

'내가 집안 기둥 몇개 뽑아서 무슨 슈퍼카나 스포츠카를 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중고 해치백인데, 그거 하나 산다고 인생 망하는 것도 아니고(그거 하나로 망하는 인생이면 이미 망한것이니ㅎㅎ),

타보고 좋으면 기운차려서 더 열심히 살면 되고,

타보고 아니면 미련없이 팔면 되잖아?' 라는 논리로

저 자신을 그리고 와이프를 설득시키는데 가까스로 성공하였고ㅎㅎ

그렇게 인생 첫 펀카 탐색을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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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멋진 e82 120d,, 넌 대학시절 나의 드림카였어!


1. 후보군 - n? gti? jcw? e82? f20!

예산은 천만원으로 구하자니 여러모로 아쉽고, 

삼천을 넘게 쓰자니.. 마눌이랑 쌍디들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히고,,(한숨만..)

'내 그릇은 여기까지구나!' 솔직담백하게 인정하고, 

깔끔하게 차값만 두장 예산으로 중고차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벨로스터n, 골프7세대, 미니jcw 등을 찾아 엔카 및 네이버 카페 등을 기웃기웃 거리는데,

대학시절 e82 120d 쿠페 옆자리에 이쁜 여친을 태우고

경영대 도서관에 커피마시러만 오던 부러운 과선배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남루한 고시생이던 제 눈에 정말 부러웠던 게 

잘 빠진 실루엣의 e82 쿠페였는지, 그분의 여친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차이기도 했고, 

지금도 매니아들이 엄지척 하는 차라는 소문에 e82 쿠페로 가보자! 하고 찾아보는데

04-13년 발매로 연식이 연식이다보니 마일리지 적고 양호한 컨디션의 차량이 극히 드물더군요.

차 좀 타본 친구에게 물으니, 그 다음 세대인 f20이 진짜 명차라고,

서너대씩 타는 사람도 봤다면서 

마지막 후륜 해치백인만큼 소장가치도 충분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솔깃..

다행히 좋은 매물도 많았고, 

타보신 분들이 대부분 내치고 나서 그리워하는 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유튜버 중 bmw 대장이라 할 수 있는 고갯마루님이 '가장 bmw스러운 밸런스와 운동성을 가진 차'라고 당당히 추천하는,

과거 클래씩 3씨리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차라는 상찬까지 듣고나니..

처음엔 어째 생기다 만듯한 디자인의 차량 외모마저도 차츰 뇌이징이 되어가더군요.

중고차 모르고 덥석 샀다가 호구 당할게 무서워, 

전에도 대리로 구매를 요청드렸던 TRS를 통해 계약을 진행했고,

40,000km 정도 탄 미드나잇블루(Midnight Blue) 색상의 후기형 118d 스포츠 모델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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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매가 꽤나 날렵해져서 전기형 대비 맵시가 좋은 후기형 ㅎㅎ 나름 귀한 블루라 더 좋았습니다


2. 시승 소감 - '10년만 일찍 탈 걸, 이 재미를 왜 이제야..!'

(생애 첫 비엠을 탄 아재의 호들갑이 가득 담긴 글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차를 회사로 받고 마침 대구 갈 일이 있어 밤에 고속도로를 태웠는데,

타자마자 느껴지는 건, 

'차가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구나..'

굉장히 잘 조여진 기계가 나의 의도대로 칼같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탔던 국민세단 소나타 뉴라이즈에서 느껴지던 그 악셀링, 핸들링과 차의 움직임 사이 0.몇초정도의 버퍼링이랄까, 

출렁출렁 훌럭거리는 멀미가 날것만 같은 느낌 같은 거 없이,

밟으면 밟는대로, 핸들을 돌리면 돌리는 대로 훅훅 치고 나아가는데, 

이건 마치 고성능 런닝화나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뛰는 느낌이랄까요.

도로라는 공간에서의 저의 그립이 굉장히 강해진 기분?

차의 움직임이 훨씬 예측가능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맘놓고 달릴 수 있겠더라구요.

이게 엔진을 최대한 안쪽으로 밀어넣은 설계 탓인지, 후륜구동 탓인지, 똑똑한 zf미션 탓인지, 새로 끼운 피렐리 타이어탓인지,

문외한인 저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ㅎㅎ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으로 전달되던 차의 훌륭한 밸런스는

고속도로 진입하는 회전교차로를 휘감아 돌 때부터 이미 또렷히 감지가 되더군요.

작은 차체에 힘좋은 디젤엔진을 넣은 탓인지 140 언저리 중고속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나 쉽고 편안했고,

고속에도 차가 묘하게 안정감이 있어 속도를 유지하는 데 불안함이 없었습니다.

차와 내가 하나가 되어 달리는 듯한 묘한 기분이라 해야하나?

과장 조금 보태서 모터싸이클을 타는 것만같은 묘한 일체감,,  

운전=스트레스 가 아니라 운전=몰입이 될 수도 있다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운전이란게 이런 특별한 감각일수도 있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다면, 

십년 일찍 총각때 쪼끔 더 무리해서 중고로라도 반드시 탔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젊은날 너무 저 스스로에게 각박하게 굴었던 게 새삼 후회가 되더라구요.

저 자신이 생각보다 수입차라는 것에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남들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습니다.

막상 타보면 이렇게 좋은 걸...

3. 차 데려와 사부작 거린 것들

기본 정비와 타이어는 출고샵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였고, 시급히 필요한 작업 몇가지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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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썬팅 : 원래는 반사식 썬팅지가 발라져있었는데, 유럽차는 어항이 근본이라고 생각해서 앞 70% 옆 30%로 했는데,, 햇빛에 눈이 따갑긴 하네요.. 여름에 타 죽을것 같으면 재시공 할듯 하긴한데, 주로 밤에 타기 땜에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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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비게이션 : 순정 디스플레이가 6.5인치라 너무 갑갑하고, 카플레이도 안되서 오자마자 알리껄로 바꿔주었습니다. 12.3인치를 하려다 10.3인치를 한건데, 시야도 덜 가리고 잘 한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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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피커 - 군대 보급형 라디오같이 생겼지만.. 나름 포칼 스피커 입니다. 오른쪽 트위터는 저렇게 타공해서 달아주시더군요. 아무리 달리기 성능에 몰빵한 차라고는 하지만, 팟캐스트의 딕션이 뭉개질 정도로 순정 스피커는 처참했습니다. 출력이 살짝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고음까지 팡팡 해상력있게 터져줍니다. 현재까진 매우 만족!


4. 결론 - 나의 마지막 bmw가 아닌 첫 bmw이길 바라면서 
이 차의 의외의 장점 중 하나는 회사사람들,
특히 주변 남자들에게 아무런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ㅎㅎ 
누구나 1시리즈가 bmw의 막둥이라는 건 알고 있고, 
작고 만만해보여서 딱히 수입차라며 뽐내는 느낌도 없습니다. 
bmw 타고싶어 환장한 놈이구나,,, 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불필요한 주목을 끌지 않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세상의 무관심 속에 이 차의 진가는 운전하는 저 혼자만 누리는 것만 같아서
이건 마치 친구들 몰래 맛난 도시락 까먹는 기분입니다 ㅎㅎ
 

118d는 충분히 빠르긴 해도 무섭게 빠른 차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슈퍼카 시승기에서 나오는 시트가 등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듯한 폭발적인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선 내가 짱이라 할만큼 실사용 영역에서는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고, 

운전이 재밌어서, 사실 좌회전, 우회전만 해도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잘나가고, 고속으로 달려도 불안한 게 없고, 

연비는 만땅 넣으면 800km 넘게 찍히고,

뒷자리는 누구 태울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기 때문에 혼자타기에는 해치백 충분히 넓습니다.

엔트리 급에서 이런 만족감과 충족감, 뿌듯함, 행복감을 주는 차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이 가격에 줄수 있는 최대치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118d야말로 전세계 최고 자동차 메이커인 bmw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차량이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이 조금 모자라다면.. 음.. 일단 1시리즈로 맛이나 좀 봐보렴' 하고 bmw가 너그럽게 말을 건네는 듯한 ㅎㅎ
 

오늘도 집에 다와가는데 출구를 일부러 놓쳐 멀리 돌아서 귀가하고 싶고,
엊그젠가 엔카에 올라온 5000km 뛴 전기형 냉동차를 
부품차 핑계로 한대 더 사서 둘까, 하고 고민하게 될만큼,, 아직까진 너무너무 맘에 듭니다.

이 차가 내 마지막 bmw라고 하더라도 뭐 사실 나쁘지 않지만 
이걸 제 첫 bmw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타면 탈수록 커져만 가네요. 
그래, 애시당초 늦었으니 1부터 하나씩 올라가자는 그런 마음이랄까요ㅎㅎ
몇년 뒤에는 꼭 꿈에 그리던 m2를 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긴글을 마칩니다.

차량 선정에서부터 구입, 정비, 탁송의 전 과정 세심히 신경써주신 마스터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