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의 자동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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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는 큰 차 사겠다... 왜?     2006/05/25 14:11  최원석      조회 6904  추천 1  



선배들과 저녁때 시내의 평양면옥에 냉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요즘 비싼 차 큰 차 사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것 같다는 얘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한 선배는 모 인터넷포털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회사주식 조금(?) 팔아서 수입차를 뽑았다고 얘기를 하더군요.(그곳 문화에서는 크기가 작은 수입차 타는게 별로 눈에 띄는 일도 아니랍니다)



선배들중에도 "다음에 차 바꿀 때는 우리도 그랜저로 뽑아볼까. 요즘 그렇게 많이 팔린다는데..."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구요. 사실 요즘 잘 팔리는 싼타페 역시 3000만원 전후는 줘야 구입할 수 있으니, 여유있는 계층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는 힘들다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만 더 어려워지는 것이고, 결국 돈을 가진 계층의 숫자나 규모 또한 커지는게 아닌게 싶기도 하고요.



운전을 했던 선배의 차는 아반떼XD였습니다. 그 선배의 나이나 생활수준으로 봤을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약간 더 큰 차를 몰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요.(물론 편견이요, 고정관념입니다^^) 본인은 '큰 차는 별로 사고싶지 않은데, 국내 중소형차들에는 불만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차들보다 더 단단하고 세련돼 보이고 연비도 더 좋은 차들이 나와줬으면 한다는 것이죠. 쉽게 얘기하면 국내 자동차메이커들은 이 선배와 같은 취향(작아도 고급스럽고 안전한)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수입차 중에서 고르려면 아직도 가격부담이 만만치 않지요. 사실 잔고장이나 유지비 부담도 걱정이 되고요.



다음은 GM대우웹진 4월호에 실렸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참고로 글에 등장하는 차들중 일부를 첨부했습니다.

  





“소형차 경차를 경시하는 풍조부터 바꾸자” “좁은 땅에서 너도나도 큰 차 타는게 말이 되느냐” 오래전부터 나온 말들이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대형차인 그랜저가 전체 내수 판매차종 가운데 1위를 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현실적으로 작은차 실용적인 차가 더 많이 팔리는게 백번 옳다. 그러나 고급 중대형세단이 훨씬 많이 팔리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곰곰히 따져보자. 한국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인 동시에 과시의 성격이 강한 상품이다. 여러분이 부자라 하더라도 고급 아파트를 보여주고 다닐 수는 없다.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처음 보는 이에게 알릴 방도는 많지 않다. 자동차는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소품 중에 자신의 성공와 능력을 빠르게 과시할 수 있는(그것이 실제로는 남루한 진실을 가리는 방편일지라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회는 갈수록 양극화된다. 어차피 소형차라 해도 기름값 각종세금 부담은 중대형차에 비해 크게 적지 않은게 국내 과세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없는 사람은 소형차 타느니 아예 차없이 다니게 되고(최근 요금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국내 대중교통은 여전히 싸고 편리한 편입니다), 있는 사람은 어차피 부담하는 세금과 유지비를 감안할 때 소형차보다는 중대형차가 더 낫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또 요즘은 국산차 품질이 좋아져 10년 이상 타는게 어렵지 않은데, 10년 넘은 승용차는 배기가스검사다 뭐다 해서 번거롭고 돈들어갈 일이 많다. 제도적으로도 실용성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는 형편이다.



더구나 국내 소형차의 경우 유럽이나 일본의 소형차들만큼 다양한 쓰임새, 디자인, 경제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올해들어 미국시장에서 현대 베르나(수출명 엑센트)가 도요타 야리스(일본 내수명 비츠)나 혼다 피트에 밀려 소형차 시장에서조차 일본차에 고전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소형차시장 역시 단순히 가격이 싸다고 해서 팔리는 것은 아니며, 국내 소형차가 소비자의 요구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세계기준에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 중에서는 차는 크지 않더라도 지금 국내 소형차보다 더 단단하고 더 멋지고 더 실용적이고 기름도 덜 먹는 차를 원하는 계층은 있지만, 국내 소형차들이 그러한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요타 카롤라. 작년 일본내수 판매 1위.





도요타 비츠. 작년 일본 내수 판매 2위.





혼다 피트. 작년 일본 내수 판매 3위.





닛산 티이다. 작년 일본 내수판매 4위.



닛산 노트. 작년 일본 내수판매 5위.



자동차 역사가 우리보다 긴 일본 유럽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높으니 고급차를 많이 탈 것 같지만, 정작 일본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키가 커서 실내공간이 많이 나오고 공간활용성이 뛰어난 다목적 소형차들이다.

작년 일본내 연간 자동차 판매랭킹을 보니 1위가 도요타 코롤라(14만9810대) 2위 도요타 비츠(13만1935대) 3위 혼다 피트(12만5894대) 4위 닛산 티이다(9만8069대) 5위 닛산 노트(9만3925대)였다. 1위 코롤라만 국내 라세티 아반떼XD급의 준중형차이고, 2~5위는 전부 GM대우 젠트라나 현대 클릭 크기의 소형차들이다.





포드 포커스. 작년 영국 내수판매 1위.





폭스바겐 골프. 작년 독일 내수판매 1위.





르노 메간느. 작년 프랑스 내수판매 1위.



피아트 푼토. 작년 이탈리아 내수판매 1위.




영국은 1위 포드 포커스(14만5010대) 2위 복스홀 아스트라(10만8461대) 3위 복스홀 코르사(8만9463대) 4위 르노 메간(8만7093대) 5위 포드 피에스타(8만3803대)로 전부 소형차 중소형차가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1위 폭스바겐 골프, 2위 오펠 아스트라, 3위 폭스바겐 파사트, 4위 BMW 3시리즈, 5위 벤츠 A 클래스. 파사트나 3시리즈가 준중형 중형급에 속하긴 해도, 중대형차는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 1위는 르노 메간, 이탈리아 1위는 피아트 푼토로 이들 역시 다목적 소형차들이다. 물론 5위권까지 전부 소형차들이 점하고 있다.



미국에선 당연히 큰 차가 많이 팔릴까? 큰 차가 많이 팔리는 것은 맞지만, 세단이 아닌 물건 싣고 다니기 편한 픽업트럭이 인기다. 작년 미국시장 판매 1위는 포드 F 픽업트럭(90만1463대)이었다. 배기량이 4.2~5.4리터로 픽업트럭중에서도 중형에 해당하지만, 가격은 1만9000달러대에서 시작하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차다. 2위는 시보레 실버라도(70만5980대) 3위는 도요타 캠리(40만1730대) 4위는 닷지 램 픽업(40만543대) 5위는 혼다 어코드(36만8415대)였다. 1,2,4위가 모두 픽업트럭이며 나머지도 미국기준에서 가장 실용성이 뛰어난 일본차로 채워져 있다.





포드 F-150



우리나라는 어떨까. 작년 내수판매 1~5위는 현대 쏘나타, 현대 아반떼XD, 기아 스포티지, 현대 신형 그랜저, 르노삼성 SM5순이었다. 올해 1~2월 판매현황에서도 쏘나타(1만5493대) 그랜저(1만4891대)가 1,2위를 다투고 있다. GM대우 마티즈(6222대)가 선전하고 있을뿐 그외 소형차들의 판매성적은 참담할 정도로 저조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와 비슷한 여건을 지닌 그러나 우리보다 잘 사는 일본 유럽의 경우 판매 1~5위권은 대부분 소형차뿐이다. 따라서 대형세단이 판매 1위를 노리고 있는 국내 현실은 무척 기이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기이한 현실을 단순히 우리 소비자들의 구매성향 문제라 보기는 어렵다.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와 더불어 소형차 경차에 혜택이 많지 않은 세제의 불합리성, 메이커들이 살만한 절약형 소형차를 많이 내놓고 있지않은 점 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돼 있다.

결국 무엇이 선행되느냐의 문제. 자기과시보다 합리성을 따지는 쪽으로 구매성향이 바뀌는게 먼저일까. 아니면 정부가 소형차를 구입하면 정말 이득이 되도록 세제를 다듬고, 자동차회사가 소비자들이 사지않고는 못배길만큼 멋지고 실용적인 차를 내놓는게 먼저일까. 어느쪽이 먼저이든 아니면 동시에 진행되든, 상황개선을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일보 최원석기자 ws-choi@chosun.com